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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회원투고] 운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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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지가 편해지자 줄다리기를 멈추고 엄마의 보지를 다시 탐험해 가기 시작했다.
나의 귀는 엄마의 숨소리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각은 내 손 중지에 가 있었다.
엄마의 보지는 선미 보지보다 흐 물 거렸지만 더 부드러운 느낌이 났다.
중지를 조심조심 움직이며 위 아래로 긁어주었다.
그러자, 엄마는 잠이 들었지만 조금씩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손에 잡혀 있는 내 자지에선 계속 물이 흘러 나와 내 손을 적셨다.
한참을 그렇게 엄마의 보지를 긁어 주는데 엄마가 다리를 붙이며 약간 몸을 틀며 입맛을 다셨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등 뒤로 오한이 몰려왔다. 잠시 동안 꼼짝을 못하고 가만히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빼냈다.
아무리 흥분을 했어도 더 이상은 용기가 없던 지라 아쉬움을 접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낮에 보았던 내 자지가 박혀 있던 선미의 보지가 아른거렸다.
겨울방학이 되자 더 이상 선미와 나의 놀이는 지속되지 못했다.
두 명의 누나도 방학을 해 언제나 집에 만 있었고 농한기라 엄마 아버지도 주로 집에 계시는 편이었다.
태어나서 방학이 싫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나마 저녁에 엄마의 보지 탐험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 짜증나는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를 다녔지만 선미와의 그런 놀이는 다음해 선미가 학교를 입학하면서 끝이 났다.
선미도 그것이 어떤 건지 또 많이 창피한 일이라는 걸 알아버린 듯 했다.
언제나 쉽게 자신의 보지를 까주던 선미가 어느 날부터 거부를 했다.
그러더니 다시는 안한다고 얘기했을 때 그 실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저녁에 엄마의 보지라도 탐험하지 않았다면 난 절망했을 것이다.
항상 아쉬움에 기회를 봤지만 선미는 더 이상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만 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포기를 하고 말았다.
내가 4학년이 되고 엄마의 보지 탐험이 일 년을 넘어 갈 즈음 나의 배짱이나 엄마의 팬티 속으로 들어가는 손기술은 거의 달인에 경지에 올랐다.
거의 매일 하다 보니 이제는 엄마가 어떤 팬티를 입고 어떤 자세로 있던 침입이 가능해졌다.
나의 손은 엄마 보지로의 침입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의 두려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갈수록 나의 침입은 대담해졌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너무 익숙해지면서 나는 아주 작은 변화들을 눈치체지 못했다.
그때쯤 나는 엄마의 팬티 속으로 손을 넣고 붙어 있던 엄마의 다리를 상습적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내 손이 들어가면 엄마의 다리가 적당히 벌어져 있었다.
처음엔 모험을 하면서 엄마의 다리를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좋아만 했지 매일 엄마의 다리가 적당히 벌어져 있는데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나이가 더 먹었거나 경험이 있었다면 엄마의 그 작은 변화를 눈치 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 나는 조금 무딘 듯 했다.
매일 반복되는 엄마 보지로의 침투에 그런 것들을 놓친 듯했다.
5학년이 되고도 조심스런 침투는 여전했는데 엄마의 변화를 나만 모른 체
그날도 엄마의 팬티를 들추었다.
거의 매일 비슷한 진행으로 들어가던 나였다.
그날따라 엄마의 보지가 유난히 질척이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터라 평소대로 탐험을 시작했다.
2년 동안의 탐험으로 난 엄마의 보지를 눈 감고도 그릴 정도로 내 손에 익 숙 하 게 만들었다.
얼마간 중지로 엄마의 보지를 긁으면서 즐기는데 그날따라 물이 유난히 흘러 나와 찌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의 숨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이라 안심을 했지만 평소와 달리 유난히 많
이 흘러내리는 엄마의 보지 물에 긴장이 되었다.
가운데 중지뿐만 아니라 다른 손가락까지 적시고도 남을 만큼 흘려대고 있었다.
많은 물과 질척이는 소리에 안 되어서 손을 빼 머리맡에 수건으로 손을 닦고는 다시 팬티를 들추었다.
엄마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살짝 돌린 체 잠에 빠져 있었다.
다시 중지를 엄마의 보지에 대자 양쪽으로 늘어져 축축하게 젖은 보지 살들이 내 손가락에 감겨들었다.
내 느낌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엄마의 보지는 더 뜨거운 듯 했다.
손가락을 위 아래로 슬슬 움직이자 다시 미 끌 거리며 엄마의 보지가 넓어졌다.
나의 중지가 움직임에 따라 엄마의 보지 살들이 일그러졌다.
최대한 살살 한다지만 분명 엄마의 보지가 반응을 하고 있었다.
내 중지가 엄마의 보지 입구에 맞춰지자 보지가 순간 움찔하며 내 손가락을 빨아 당겼다.
난, 엄마의 얼굴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중지에 힘을 주며 엄마의 보지 속으로 들어갔다.
미 끌 거리며 너무도 쉽게 쑥 들어갔다.
엄마의 보지 속에 손을 넣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선미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들어갔다.
아니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잠이 들었지만 확실히 어른의 보지는 틀리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보지도 선미처럼 뜨거웠다.
조이는 힘이나 빡빡함은 덜 했지만 우둘투둘한 느낌의 보지 살들이 내 손가락을 물자 그 느낌이 또 색달랐다.
한참동안 엄마의 보지를 음미한 나는 왕복운동은 자제한 체 손가락만 구부려 엄마의 보지 속을 본격적으로 탐험을 하 기 시작했다.
중지를 깊숙이 밀어 넣고는 중지를 움직이자 엄마의 보지 살이 내 손 가락에 휘감기며 흐 믈 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보지는 선미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질척이며 내 손가락에 휘감기는 엄마의 보지 살에 너무 흥분해서 하마터면 엄마에게 올라탈 뻔 했다.
엄마가 그렇게 보지 물을 잔뜩 흘리고 나서 뒤처리 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다.
손 전체가 보지 물로 흠뻑 젖어서 머리맡에 수건으로 한참을 닦아야만 했다.
엄마가 깰까봐 눈치를 보느냐고 조심스럽게 한참을 닦아야 했다.
그런데 희 안하게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내 머리맡에는 항상 수건이 놓여있었다.
엄마가 나의 침입을 혹시 아는 게 아닌 가 의심을 하긴 했지만 만약 알았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내 상식으론 그랬다.
의심이 들었지만 엄마의 행동이나 표정에선 전혀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안심을 하자 나도 별다른 의심 없이 엄마 보지 탐험은 계속 되었다.
이젠 잠자리에 들면 내 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엄마의 보지로 향했고 엄마의 다리는 언제나 처 럼 내가 만지기 좋게 적당히 벌어져 있었다.
저녁마다 내 손은 엄마의 보지 물을 포식해야 나는 지쳐 잠이 들었다.
나중엔 엄마가 깰까봐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하고는 그게 다였다.
선미처럼 서로의 성기를 비빌 수도 없었고 빨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별다른 진전 없이 나의 엄마 보지 탐험은 6학년쯤 끝이 났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그때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주위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우연하게 사정의 쾌락을 알게 되면서 난 다른 쾌락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자위는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일요일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 아버지는 일을 나가시고 안 계셨다.
아침마다 우뚝 선 자지를 주체하지 못해 이불에 비벼 대었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비비다 왠지 부족한 느낌에 이불을 뚤뚤 말아 깔 고는 그 위에 올라
타고는 바지도 무릎까지 내렸다.
섹스를 할 때처럼 허리를 움직이는데 이불의 부드러운 느낌에 멈추지를 못하고 계속 비벼댔다.
그러다 뭔가가 배속에서 부터 밀려 나온 느낌에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느낌 첫 사정이었다.
10살 때 처음으로 엄마의 보지를 만지기 시작해 선미에게 어설프게나마 삽입도 해봤지만 사정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했다.
이불에 가득 싸놓은 멀건 정액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다.
그 후로 정말 많은 자위를 했다.
하루에 대 여 섯 번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표피가 까질 정도로 해서 며칠을 못한 적도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 자지에 거뭇거뭇하게 털이 나기 시작하고 자위를 많이 해서인지 자연스레 포경이 되었다.
내 자지는 검붉은 색을 띄며 어른들이 말하는 좆이 되어 있었다.
그 즈음 난 또 다시 주위의 여자들에게로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섹스를 갈구했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이고 시골 마을이라 딱히 눈에 들어 오는 여자가 없었다.
자위를 할 때는 언제나 엄마를 상상했지만 그저 상상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욕구를 자위로 풀면서 내 중학교 시절이 가고 고등학교를 입학
하면서 다시 내 운명이 바뀌는 중대한 사건을 맞이했다.
고등학교가 없던 우리 시골에서는 도회지로 유학을 가야 했다.
시골집에서는 통학이 어려워 대부분 자취를 했는데 나 역시 자취를 해야만 했다.
큰 누나 선 희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마쳤고 작은 누나 선자는 여상을 다니면서 자취를 했다.
그런데, 그때가 고3이라 나하고 같이 살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쯤 큰 누나는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 전경으로 근무하던 그 남자를 몇 번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다.
그 때의 큰 누나는 정말 예뻤다.
22살 한창때였으니 얼굴에서 빛이 날 시기였다.
볼 때마다 싱글 벙글 웃던 큰 누나의 남자 친구가 어찌나 밉던지 큰 누나와 헤어져 작은 누나하고 돌아 올 때 항상 험담을 하고는 했다.
그리 고, 19살이던 선자 누나는 집안의 둘째라 성격이 요즘말로 까칠했다.
하지만, 얼굴이 작고 정말 예뻤다. 나를 쥐 잡듯이 하는 성격만 아니면 큰 누나 보다 더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도 작은 누나와의 자취 생활은 편했다.
밥이며 빨래까지 모두 작은 누나가 했기에 내 친구들처럼 못 먹고 힘들게 다니지는 않았다.
우리 자취방은 다세대 연립 비슷한 곳이었다.
작은 부엌 겸 욕실과 방 하나가 전부였지만 출입문이 뒤에 따로 있어 편하게 살았다.
다만, 나는 누나 때문에 자유롭게 자위를 못하고 따로 떨어져 있던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해서 그게 불만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가끔 누나의 팬티를 슬쩍해서 냄새 나던 화장실에서 흥분한 좆을 흔들었다.
누나의 팬티로 감싸 잡고 흔들 때는 저녁에 누나를 덮치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사정을 하고 나서 정신이 들면 또 그렇게 넘어 가고는 했다.
내가 선자 누나에게 그런 생각을 쉽게 가진 것은 어쩌면 엄마의 보지를 만지면서 생긴...
근친간의 섹스가 별다른 죄책감을 주지 못한데 기인한 거 같기도 했다.
여름이 지나고 작은 누나가 취업을 나가서 일을 하면서 난 방에서 자위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를 갔다 오면 바로 서랍을 뒤져 누나의 팬티를 꺼내 내 좆에 감고는 정신없이 용두질을 하면서...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작은 누나를 따 먹고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막상 현실이 되면 손도 못 대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냥 잠에 빠져 들던 내가 참 많이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가을로 접어들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내 꿈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연탄불을 피웠지만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 방에서 자면서 우리이 사이가 점점 좁아졌다.
어느 날 부터는 거의 붙어서 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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