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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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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내어 줄 수 있지만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죠?’
당황스러웠다. 쪽지를 받은 적은 있었어도 보내 본 적은 없었던 지우는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하고 있었다. 그 동안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에게 쪽지를 보내왔던 사람들은 지우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밀쳐내는 식의 질문을 받게 되자 당황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하지만 지석의 말대로였다. 지석이 남겨둔 흔적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했었지만 그런 지석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얘기는 없는 모양이군요.. 그럼 이만….’
당황스러운 마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지석은 그렇게 말을 자르며 대화창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깜박거리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며, 혼자 남겨진 대화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우는 자존심이 상해 버렸다. 에스엠 커뮤니티를 들락거리고는 있었어도 아직까지 지우는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한 여신이었다. 여전히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실수가 있기는 했었지만 회사에서도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도도한 그녀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그런 지우에게 보여준 지석의 태도는 무관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석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해버린 지우는 발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지석에게 쪽지를 보내려고 대화창을 열었지만 좀처럼 키보드를 두드릴 수가 없었다. 발끈하기는 했어도 딱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지석의 태도는 무례하지도 않았고, 도리에 어긋난 것도 아니었다. 말을 건 것도 자신이었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도 자신이었다. 실생활에선 모든 남자들이 동경을 받고 있는 지우였지만 이곳은 에스엠 커뮤니티였고, 또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지석이 모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쳐버린 자존심이었지만 딱히 뭐라고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지우는 다시 한번 지석의 흔적들을 더듬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흔적들을 살펴 보면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고, 또 왜 그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던 것일까를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지우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자기관리에 관한 글이었다.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섭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돔 본인의 전반적인 자기관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조건이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 자체를 도미네이션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돔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주장을 대하며 지우는 지석이 여자들을 후리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아 즐기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남자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 호기심을 충족 시키기 위해서 지우는 지석의 다른 글들을 검색해 보았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우가 놀랐던 것은 지석의 글들에서 오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니컬 해 보이기조차 하는 논조였지만 깔끔한 문장에서 그의 성격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할 것만 같은 느낌이 그 남자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자유스러움이었다. 특히나 형식과 틀 속에 갇혀 허세를 떠는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지석의 성격은 상당히 자유롭게 보였다. 돔은 이래야 한다. 섭은 저래야 한다. 디에스는 사랑이다 아니다 등의 많은 설왕설래를 그는 간단히 변태는 변태일 뿐이라는 말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연애를 즐기던 주종관계를 맺던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일 뿐이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을 하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역할 놀이를 하던 그것들은 당사자들의 문제일 뿐이고 결국 에세머들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관점에서 변태일 뿐이다. 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런 지석의 논리 안에는 변태라서 뭐 어쩌라는 것이냐는 당당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당당함을 대하면서 지우는 지석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그는 그의 파트너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지우는 그가 얘기했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지석의 글들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이번에도 밀쳐 내어지면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그의 문을 두드렸다.
“딩동~”
커뮤니티를 훑어 본 후 막 사이트를 닫으려고 할 때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었다. 딱히 더 이상 둘러볼 뉴스도 찾아볼 정보도 없었기에 지석은 메시지 함을 열었고, 이제 막 도착한 지우의 쪽지를 클릭해 열었다.
‘재미있는 아이군…’
지우의 메시지를 읽은 지석의 첫 느낌이었다. 메시지 안에는 조금 전 지석이 보낸 답장 때문에 당황스러웠다는 애교 섞인 투정과 자기 소개, 그리고 지석의 글들을 읽은 느낌들이 간략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31세의 광고 디자이너. 남자친구는 있었고, 자신이 에세머인지 아닌지 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의도치 않았던 계기로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지만 구인을 목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남자들의 흑심 정도는 꿰뚫어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시간을 내어주신다면 당신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괜찮으신지요..’
영리한 아이였다. 시간을 내어 달라며 말을 걸었던 첫 번째 메시지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되물었던 자신의 의도를 이번에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 어떤 생각을 알고 싶은 거죠?’
또 다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처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변태론(?)을 잘 읽었었는데요.. 저도 그럼 변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쪽지를 통해 간략하게 정리는 했었지만 자신이 왜 이 커뮤니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지석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별다른 말이 없던 지석이 지우의 이야기가 끝나가 짧게 덧붙였다.
“에세머들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란 거 알고 있나요?”
“네?”
“가학과 피학이 본능의 영역이라는 건 알고 있죠?”
“네..”
“본능들은 이기적일 때 채워지죠.. 배고프면 누가 뭐래도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 하는데 그 행위들이 누가 시킨다고, 누굴 위해서 하는 게 아니란 얘기에요”
“네..”
“하물며 에스엠은 성욕이 속한 범주에요. 거창하게 디에스니 뭐니 하면서 지배를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결국 성욕을 채우기 위한 욕망의 발현이란 거죠. 더구나 가학과 피학을 통해 있으니 일반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에스엠은 변태인 거고, 또 이기적인 거죠”
명쾌한 논리였다. 지석의 말대로인 것 같았다. 돌아보면 자신은 틀림없이 이기적이었다. 지우에게 있어서 자기만족은 최상의 가치였던 것이다.
“흔히 피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기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피학이라는 성향이 수동적인 부분이 크니까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죠. 그 피학이라는 것이 누구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니까…”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동안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면서도 지우는 자신과 같은 성격의 여자가 피학의 성향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석의 얘기처럼 자신은 이기적이었고, 자기 만족을 위해 살아온 여자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공주처럼 떠 받들어주고 있었고, 지우는 지우대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지우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했고, 지우는 그런 남자들 중 적당한 남자를 골라 손을 내밀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원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자신의 환심을 사려는 남자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침대에서조차 공주대접을 해주는 남자친구와의 섹스는 달콤했지만 2% 부족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그녀 안의 열망을 표현할 수도 없었던 지난 날이었다. 에스엠 커뮤니티를 찾은 후부터 조금씩 자신의 성향을 깨달아 가기는 했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가 지석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는 것만 같았다.
“하아… 아으응… 하아…하아아아..”
마치 날개라도 단 듯이 끝모르게 치솟던 자극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던 지우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들고 있었다. 숨을 고를 때마다 흠칫 흠칫 몸이 떨려왔다. 오줌이라도 싼 듯이 잔뜩 젖어버린 시트의 차가운 물기가 엉덩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어때? 강아지로써 처음 느껴본 기분이…?”
누워 있어도 보기 좋게 솟아 올라 지우가 숨을 헐떡일 때마다 들썩거리던 가슴의 요동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할 무렵 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3개월… 지석을 만난지 3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지우는 알 수 있었다. 그 3개월이 자신을 얼마나 멀리까지 데려오고 말았는지를… 그리고 두 번 다시는 3개월 전의 지우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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