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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 아내 -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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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고 어스름했던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각. 어두워진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평소보다 활기가 느껴진다. 오늘 밤을 꼴딱 지새워도 다음날은 쉴 수 있는 주말 저녁이기에.
오늘 밤을 길거리에서 하얗게 불태우는 사람도 있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있는 걸 알려주듯 창문너머로 드문드문 새어나오는 불빛들. 그 불빛들 중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듯 불이 들어와 있는 한 집이 있다.
“후우우…….”
피곤함이 절절이 묻어나는 여성의 목소리. 거실에 놓여있는 TV에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고, 그런 TV앞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여인의 이름은 정나은이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방해되는 긴 생머리는 한데 묶어 포니테일로 묶었고, 상의는 얇으면서도 가벼운 하얀 민소매를 입어 스트레칭 하느라 난 땀에 살짝 젖어 뽀얀 살갗이 비치는 모습이 선정적이라기 보단 청순미가 느껴진다. 하의도 스트레칭하기 편한 복장으로 갖춰 입었기에 짧으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핫팬츠를 입고 지친 몸을 풀어주고 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
정나은은 긴장의 연속이었던 이번 주를 회상하며 몸서리친다. 저번 주와는 달리 이번 주는 한 주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데 중점을 둔 것인지, 오전에는 공중 화장실을 전전했고, 오후에는 남편이 일하는 직장의 화장실에서 묶인 채 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에 싫어도 민감해지는 몸은 몇 번이나 절정을 맞이해 집에 오면 기절하듯이 잠드는 한 주였다.
‘몸도 아프고……무엇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하루 종일 묶여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반드시 한 번은 김우영의 욕망을 받아내야 했던 그녀로썬 정말로 고역이었다.
‘그래도 이제 화장실은 안 간다고 했으니…….’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한 정나은이 말 그대로 김우영을 죽도록 패며 받아낸 약속이 이번 주로 화장실에서 하는 건 끝이라고 했다. 못 미더웠지만 속는 셈치고 한 주를 묵묵히 버텨내 지금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아픈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그녀는 때때로 찌릿하고 올라오는 아랫배의 기묘한 감각에 눈살을 찌푸린다.
‘몸이 반응하는 건가? 아니겠지…….’
화장실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서일까?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찌릿한 감각과 그 때를 연상케 하는 미묘한 열기가 정나은의 몸을 달군다. 간단하게 몸을 풀어주고 주말은 푹 쉴 생각이다.
‘아니면 남편과 어디 놀러가자고 할까?’
정나은은 그동안 남편과 너무 대화를 안 나눴다는 걸 문득 떠올린다. 흐지부지 된 부부싸움 이후 자신이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기절하듯 잠들어버리다 보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평범한 대화밖에는 나누질 못했다.
“응. 그러자.”
서먹한 남편과의 관계도 개선할 겸 남편과 어디 놀러가기로 마음먹자 피곤했던 몸에 약간이나마 활기가 돌아오는 걸 느낀다. 사랑하는 남편과 어디 놀러갈 생각에 절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스트레칭에 집중해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정나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어딘가가 망가진 걸까? 정나은은 이 비정상적인 생활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걸 그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집에 오려나?”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진다. 근래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너무나도 터무니없고 힘겨웠기 때문일까? 정나은은 본래 이런 작으면서도 소소한 행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하고, 가로막고 있는 벽이 있으면 노력해서 뛰어넘는 그런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찾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마치 20대에 안정수와 연애할 때처럼 그에게 기대고, 그에게 편안함을 나눠받던 아직 미숙하고 약했던 그때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는 걸 그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몰랐다.
“하으윽…….”
마지막으로 허리를 가장 집중적으로 피로를 풀어주고, 정나은은 시원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내며 거실에 편안히 눕는다. 곱게 감긴 눈망울과 스트레칭으로 인해 연분홍빛으로 물든 양 뺨과 깊은 숨을 토해내는 두툼한 입술. 답답하게 가슴을 옥죄던 브래지어는 당연히 벗어버려 민소매에서 언뜻 엿보이는 탐스런 가슴 라인은 그녀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천천히 부풀고 내려가길 반복한다. 짧고 통풍이 잘되기에 품이 넉넉한 핫팬츠를 터트릴 듯이 꽉 채운 탄력적인 엉덩이 살이 엿보이고, 길게 뻗은 육덕진 다리는 기분 좋게 풀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벌려진 채며 꼬물꼬물 귀엽게 움직이는 발가락이 그녀의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분 좋은 피로감에 휩싸인 그녀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빡깜빡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맡겼다.
“……으음.”
그렇게 거실에서 잠시 선잠에 빠졌던 정나은의 귓가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분 좋은 몽롱함에 휩싸여 잠에서 깬 그녀는 현관문 너머로 들어오는 이를 맞이하기 위해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에 힘을 주며 몇 번이나 눈꺼풀을 깜빡인다.
“아……어서 와. 늦었……네?”
정나은은 자신의 눈이 고장 난 건 아닐지 착각에 빠진다. 현관문 너머로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꼭 감았다가 뜬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두 사람이 비춰지고 있었다.
“어? 어라?”
사랑하는 남편 안정수와 그의 직장 상사 김우영 부장이었다. 이미 저녁을 먹으며 한 잔씩들 거하게 걸쳤는지, 얼굴이 붉고 술 냄새가 스멀스멀 집 안 공기를 바꾸지만 정나은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대, 대체 왜 또 온 거야?!’
핏기가 가시려는 정나은은 최대한 평정을 가정해 남편과 손님을 맞이한다. 하지만 당황과 초조함이 뒤엉킨 정나은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어쩐지 어정쩡하다.
“아, 소, 손님이시네? 지난번에 뵈었었죠?”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안 사원도 한 잔 걸쳤는데 자기 집에서 한 잔 걸치자고 하는 바람에 염치 불구하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정나은과 김우영은 겉으론 통상적인 인사말을 건네면서도 그 말 속에 숨은 속뜻을 풀이하자면 서로에게 이렇게 들릴 것이다.
‘무슨 생각이야?!’
‘이번엔 내 탓이 아닌데……안 사원이 불러서 반쯤 강제로 끌려온 거라고!’
짧은 순간이지만 김우영은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강하게 당황스런 표정과 다급한 손짓으로 안정수를 가리키곤 서로 어색하게 하하호호 웃는다. 그런 둘 사이에 술이 거하게 취한 안정수가 끼어들며 말한다.
“어쩌다보니 한 잔 걸쳤는데. 내일 주말이기도 하고, 한 잔 더 걸치면서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집으로 데려왔어. 안 될까?”
“으, 으응? 아, 아니 안 될 건 없지. 하지만 한 마디 언질정도는 해줬으면 좋았잖아.”
“……응. 그런 것 같네.”
안정수가 아내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다. 그러자 정나은은 스트레칭 하느라 편안한 복장 그대로 서 있다는 걸 깨닫곤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보니 속옷도 안 입었는데?!’
팬티정도야 입었지만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는 여자라면 열이면 열 집에선 차지 않는다. 스트레칭하며 난 땀은 거의 식어 살갗이 비치진 않지만 땀이 마르며 달라붙은 민소매 티는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 라인과 탐스런 가슴의 능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 옷 좀 갈아…….”
“여보. 술 뭐 있어?”
당황한 정나은이 옷을 갈아입고 온다는 말을 안정수가 중간에 뚝 끊으며 질문을 던지자 정나은은 손님 대접이 먼저라고 판단했는지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든다.
“큰일이네. 한 병 뿐인데…….”
직장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와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 두 사람이기에 술이 항상 냉장고에 있지만 그렇다고 넉넉하게 있는 건 아니다. 맥주 한 병과 잔 2개를 가져온 그녀는 간단한 안주를 재빨리 만들어 거실에 자리 잡은 두 사람에게 가져다준다.
“이거 한 병으론 부족하겠죠? 일단 제가 옷 갈아입고 사오…….”
“에이~뭘 그렇게 내숭 떨어. 와서 같이 한 잔 해. 부족하면 그때 사오면 되고.”
“으, 으응? 아, 아니 그게…….”
평소와 달리 묘하게 적극적인 남편의 모습에 정나은이 당황하고 사이 얼른 자리에 앉혀버린다. 두 사람 사이에 앉게 된 정나은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주체 못하고 지금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 대체 뭐야 이게?!’
초조함이 묻어나는 정나은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 안정수의 영문 모를 행동에 김우영조차 황당함을 느꼈지만 곧 태연함이란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쓴다.
‘이거……무슨 생각이지?’
김우영의 눈은 가늘어지며 곁눈질로 안정수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딱 오는 것이 없다.
‘삼자대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고……눈치는 챈 것 같은데.’
지난번에 화장실에서 나올 때의 그의 모습이나 이번 주 내내 자신에게 향하는 그의 시선과 마주친 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 자리는 정나은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녀조차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우리 암고양이는 남편이 어느 정도 눈치 챈 것조차 모르는 것 같군.’
김우영은 정말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안정수에게 맞춰주며 그가 어떻게 나올지 보기로 결정했다.
태연함을 가장하는 김우영과 초조함이 묻어나는 정나은을 내버려 둔 채 안정수는 그녀의 술잔까지 손수 가져다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얼떨결에 합석하게 된 정나은은 둘 사이에서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리며 가끔 어색하게 웃을 뿐 대화가 오가는 건 두 남자뿐이다. 하물며 두 사람의 대화는 묘하게 겉돈다고 해야 할 지 집에까지 와서 할 정도로 재미있는 것도 중요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대화다.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겨우 한 병뿐인 맥주는 세 사람이 마시기엔 턱 없이 부족한 양이다보니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바닥을 들어낸 맥주를 보곤 세 사람은 술이 떨어졌다는 말을 어색하게 고장 난 장난감처럼 되풀이 한다.
“아, 제가 사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
이때다 싶어 정나은은 이 숨 막히는 공간을 탈출할 유일한 동아줄을 냉큼 붙잡기 위해 말을 꺼냈지만 그 말을 하기 기다렸다는 듯이 안정수가 그녀의 말을 뚝 자르며 말한다.
“아냐. 아냐.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있어. 내가 사올게. 부장님 말벗이나 해드리고 있어.”
“어? 어어? 아니……당연히 내가…….”
술기운에 붉게 달아오른 안정수의 얼굴과 기분 좋은 미소와는 반대로 정나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꾸욱 눌러 자신이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다. 손님의 입장인 김우영은 당연히 논외라 치더라도 밤 11시를 살짝 넘은 시간이 여자가 동네 편의점에서 술 사오는 게 문제가 될 시간도 아님에도 마치 여기 있으라는 강압적이기까지 한 남편의 행동에 들썩이는 엉덩이를 다시 내려놓는다.
“…….”
김우영은 그런 안정수의 이해 못할 행동에 눈이 가늘어지며 잔에 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마치 안정수가 자신의 아내와 내가 둘만 남는 상황을 억지로 만드는 것 같다.
‘무슨 생각이지? 현장을 덮치겠다는 건가? 이렇게 뻔히 보이는 걸?’
평소 유하고 덜렁거리는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바람피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 상황에 구태여 그 의심 가는 사람과 한 자리에 앉혀둔다? 마치 잡아먹으라고 눈앞에 들이미는 그의 행동에 김우영은 고민한다.
‘이거……받아줘야 해? 말아야 해?’
현장을 덮치겠다는 생각이라면 너무나도 허술하다. 하지만 지난 번 화장실 앞에서 본 그의 모습을 떠올리던 김우영은 이렇게 허술하게 작전을 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뭘 노리는 거지?’
당황해 엉덩이가 들썩이는 정나은을 자리에 앉혀두고 안정수는 기어코 술을 사러 나갔다. 철컥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남아있는 두 사람의 몸을 강타하듯 울려 퍼진다.
안정수는 밤이 깊어 한층 차가워진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뒤 부글부글 끓는 가슴 속 열기를 조금이라도 토해내듯 길게 내뱉는다.
“후우~”
차가운 밤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셔도 방망이질 치는 자신의 심장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기분 좋아야 할 알딸딸하게 올라온 취기는 그의 질척한 질투심과 뒤섞이자 더 할 나위 없이 기분 나쁘다.
안정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 곳은 동네 편의점이 아닌 주차장이었다. 고요한 주차장에 들어선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차로 이동해 트렁크를 연다. 안정수는 트렁크에 미리 준비해둔 술을 꺼내들곤 또다시 느릿한 걸음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일단 한 대 필까?”
느릿한 발걸음으로 집에서 멀지 않지만 어두운 골목에 자리 잡고 잠시 담배 하나를 꼬나물곤 불을 붙인다. 조용한 골목길에 비닐봉지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한 남자의 깊은 탄식이 어우러진다.
“후우우…….”
밤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담배 연기는 곧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지만 안정수는 사라진 담배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가 이렇게 구태여 자리를 마련한 건 다름이 아니다.
바로 아내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자신에겐 그것 하나면 족하다.
‘일주일 내내 고민해봤자. 결론이 안 나니깐…….’
자나 깨나 안정수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란 그 간단한 해답조차 끊어지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념이 끊이질 않았다. 학창시절에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들이 그립다는 게 이런 걸까? 옳은 정답이 항상 우리의 눈앞에 들이밀어지지만……어른이 된 후로는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뿐이다.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누구나 어른이 되어 가면서 후회하는 생물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래도저래도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면 한 가지 뿐이다. 다시 한 번 그 상황을 만들어 아내가 정말로 원해서 그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인지, 아닌지를.
‘동시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도 알 수 있겠지.’
차갑게 식은 이성은 그러지 말라고 외친다. 그것이 아내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지 않냐고 외친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변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 안정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버릴까봐 무서운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부글부글 끓는 이 질척질척한 질투심과 아내를 향한 소유욕은 당장 집안에 뛰어 들어가 보라고 자신의 등을 떠민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던 무슨 상관이냐고 어차피 누구에게 줄 생각 따윈 없지 않냐고 심장이 외친다.
“하지만 나도 바람을 펴 버려서 말이지…….”
그것이 김우영이 준비한 무대일지라도, 달콤한 말로 자신을 꿰어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한 거다. 아내 역시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과 달리 반 강제로 이뤄진 선택일지도 모르고, 그녀 스스로 선택했지만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있어선 그녀의 반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자신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핑계 삼아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지도 모르고, 아내의 선택을 존중해 기다려주는 걸지도 모른다.
“……응. 변명이지.”
차갑게 식은 이성도 아니다. 질척질척한 질투심과 소유욕도 아니다. 자신의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다른 하나의 감정.
배덕감이다.
대리기사에게 잔뜩 취해 잠든 아내에게 장난질을 시킬 때에도, 김수진이라는 얼굴조차 모르는 여인과 잠자리를 가질 때에도, 아내를 향한 배덕감이란 씨앗은 뿌리 깊게 자신의 몸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얼마 전 현관문 아래에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헐떡이는 걸 봤을 때 발아해버렸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가, 똑 부러지고 자기관리 철저한 아내가…….
자신에게만 보여주던 여자의 얼굴로 헐떡이며 더럽혀진 채 다른 이의 품에 안겨있는 걸 보았을 때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를 향한 자신의 삐뚤어진 사랑을…….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더럽혀 보고 싶다는 삐뚤어진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삐뚤어진 사랑을 인식하자 다른 감정이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 그렇기에 그는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과연 김우영 그가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현관문 아래에서 보였던 아내의 모습에선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의 남편이기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은근히 강한 척을 한 단말이지.”
안정수는 20대에 그녀와 연애할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20대의 그녀는 이정도로 콧대 높고 자기관리 철저히 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그런 싹이 보이긴 했다. 데이트 비용을 반드시 반씩 내는 거라든지, 여자로써 사랑하는 남자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게 몸짓으로 분위기로 표정으로 나타남에도 그걸 알려주기 싫어 강한 척하는 면이라든지 주위 사람에게 완곡한 배려어린 말이 아닌 날카로운 가시를 들이대곤 남모르게 미안함에 끙끙 앓는 점이라는지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그녀를 데리고 살까 조롱어린 시선도 그녀에게 모일 때도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그 가면이 너무나 견고해져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자신만은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얼마나 연약한지, 남모르게 속앓이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렇게 서투른 여자가 자신에겐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그녀를 데리고 살 수 있을까? 그렇기에 청혼했고,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사랑을 그녀가 받아주었다.
“그러니깐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내가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려줘.”
차가운 이성도 질척질척한 질투심과 소유욕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배덕감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후회 어린 선택이 이것이다.
안정수는 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상냥함을 핑계 삼아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새 다 타들어간 담배를 짓눌러 잘 끈 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너무나도 익숙한 두 부부의 보금자리. 창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잠시 바라본다.
‘하지만……김우영은 아니야.’
안정수의 눈에는 그는 절대 자신의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리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질척한 질투심과 소유욕이 불러낸 결론일지도 모르지만……알게 뭔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다. 아내다.
그리고 자신이다.
“가능하면 오늘로써 끝났으면 좋겠지만……그럴 린 없겠지.”
이렇게 뻔히 보이는 무대. 이렇게 뻔히 보이는 상황. 그의 여성편력을 생각한다면 이런 뻔 한 무대에 그가 올라올 리 없다.
현관문 앞에 선 안정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철컥하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며 두터운 문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 보이는 거실의 전경.
‘그렇겠지.’
자신이 나갈 때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전경이다. 그럼에도 안정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두 사람의 모습을 시선으로 훑는다.
‘차라리 옷을 입으라고 할 걸 그랬나?’
아내의 편안하지만 노출도 높은 이 복장을 본 순간 그는 그냥 이대로 입혀두는 것이 나을 것이란 판단을 했다. 남자란 생물은 이성보단 본능에 더 충실한 생물이기에 눈앞에 먹잇감을 들이밀면 자신도 모르게 덥석 물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너무 옷가지가 적다보니 흐트러진 복장이라든지, 변화 등을 눈치 채기 어렵다. 안정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또 다시 태연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아무래도 좋은 대화를 이어간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잔뜩 취한 두 사람은 대화거리도 떨어져 드문드문 말이 끊기며 파장하는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이미 저녁을 먹으며 술을 잔뜩 마신 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 의미 없는 대화를 두런두런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술이 잔뜩 들어가 한계치를 넘었다.
‘흐음……큰일이네. 오늘 밤새도록 그에게서 눈을 떼선 안 되는데.’
안 그러면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가 없다. 아내도 함께 술을 마셨지만 우리와 달리 아직은 쌩쌩한 분위기다.
“나은이는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 우리가 정리하고 잘게.”
“응? 아니……남편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내가 할게.”
“아냐. 요새 피곤해 했잖아. 들어가 자.”
집에 오기만 하면 기절하듯 잠드는 아내였기에 그걸 핑계 삼아 어서 들어가라고 하자 정나은은 어색해하면서도 먼저 일어나겠다고 김우영 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굳게 닫힌 안방 문을 주시한 뒤 안정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밤도 늦었으니 자고 가라고 권유한다.
“응? 그래도 되겠는가?”
“네. 작은 방이 있으니 거기에 이불을 펴드리죠.”
“아냐. 괜찮네. 그냥 덮을 것만 좀 가져다주겠나? 거실 소파에서 자도 돼.”
안정수의 권유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연스레 숙박을 승낙한 김우영은 소파에 자리 잡는다. 안정수는 굳이 작은 방이 아닌 거실을 사용하겠다는 소리에 눈이 가늘어진다.
‘작은 방이라는 무대를 굳이 마련해 줬는데 왜 거실을…….’
역시나 너무 눈에 뻔 한 수였나 보다. 솔직히 그냥 살짝 찔러보는 수준이었기에 실망감도 없는 안정수는 자신이 덮을 이불과 그에게 덮을 이불을 가져다주고 거실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술잔을 기울인다.
TV까지 끄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드문드문 두 남자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끊어졌다. 그리곤 곧이어 들려오는 김우영의 코고는 소리에 안정수는 쓴 미소를 짓는다.
“……쩝.”
아무래도 정말 오늘은 틀린 것 같다. 술자리를 정리한 그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본다. 자신과 다르게 걱정이라곤 엿보이지 않는 편안한 잠든 얼굴. 부글부글 끓는 이성과 본능이 한데 뒤섞여 수많은 감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수많은 감정 속에 숨어있는 배덕감이라는 감정은 그 어떤 감정보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안정수를 휘감는다. 안정수는 그런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멀어지려는 그때 김우영의 바지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하얀 천을 발견했다.
“……?”
그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섬세한 성격이었나?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에게라면 막대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안정수는 평**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했다. 그의 주머니에서 그 하얀 천을 끄집어낸 것이다.
“응?”
손수건의 질감이라기엔 너무나 부드럽고 꾸깃꾸깃한 천 조각. 조심스레 펼쳐든 하얀 천 조각은 손수건이 아니었다. 순백의 여성용 팬티였다.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묘한 온기가 남아있는 그 팬티는 벗은 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어떠한 체취마저 느껴진다.
안정수는 직감적으로 이 팬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굳게 닫혀있는 안방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안정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
안정수는 다시금 조심스레 팬티를 그의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조심스레 거실 한 편에 자리 잡고 이불을 두른다.
안정수와 김우영이 있는 거실에는 곧이어 고요한 정막이 조금씩 차오른다. 이미 밤이 깊어 베란다 너머로 들려올 도시의 소음마저 뚝 끊긴 지 오래다. 창문에는 커다란 커튼이 쳐져 있음에도 유난히 달이 밝은지 거실로 스며드는 달빛이 어스름한 거실 풍경을 비춰준다.
‘…….’
안정수의 눈은 어둠에 적응되고 달빛이 조금씩 스며들자 잠든 있는 김우영의 얼굴이 자세히 보인다. 요요한 달빛이 주는 거실의 묘한 분위기를 신경 쓰지도 않고 안정수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다.
째깍째깍 울리는 시계바늘 소리가 안정수의 귓가를 파고들며, 미친 듯이 뛰는 안정수의 심장을 조금씩 진정시킨다. 안정수의 가슴속에 휘몰아치는 감정 때문일까? 아니면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허용치를 훨씬 넘은 음주량 때문일까? 안정수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는 한참동안 미동도 않는다.
달콤한 술 향기가 진하게 진동하는 숨결이 안정수의 입에서 새어나오고, 날카로웠던 눈매는 서서히 술기운에 잠식당하며, 달빛을 타고 찾아온 수마라는 이름의 잠이 안정수를 짓누른다.
‘……흐음. 자면 안 되는데.’
적당히 술을 조절하면서 마신다고 해도 그의 얼굴만 보면 이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수많은 감정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술잔을 연거푸 들이키게 되며 자제가 안 됐다. 김우영 역시 술을 상당히 마셨다는 걸 증명하듯 코를 골며 잠들어 있지만 여기서 자신이 잠들어 버리면 이 무대를 기껏 마련한 이유가 없다.
‘그가 참가 할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 순백의 팬티 때문에 안정수는 결국 마음을 다잡고 수마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으니, 그의 컨디션 상태였다.
일주일 내내 그를 괴롭혔던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민은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허용치를 훨씬 넘은 음주량은 불같이 뛰노는 그의 가슴을 수마라는 이름의 달콤한 꿀이 잠식해 들어가며, 그의 눈은 이따금 감기는 시간이 길어진다. 꾸벅꾸벅 흔들리던 안정수의 고개는 어느새 벽에 기대져 있고, 이따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보지만 그 무게를 이길 자신이 없는지 감기는 시간이 더욱 길어져 갔다.
편안하고 고요한 어둠속에서 어째서인지 안정수는 퍼뜩 눈을 떴다. 김우영과 아내의 선택을 지켜봐야 한다는 강한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바람?’
안정수는 취기에 잔뜩 달아오른 자신의 뺨을 살랑살랑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집 안에서 불리 없는 바람. 게다가 밤공기임을 증명하듯 차가움을 내포하고 있다. 안정수는 잠시 취한 달콤한 휴식 때문에 더욱 몸이 처지는 걸 느끼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이 살짝 열려있기라도 한 것일까? 두꺼운 커튼이 그 밑자락을 살짝 흩날리는 것이 안정수의 눈에 들어온다. 워낙 정신이 없는 밤이었기에 베란다를 닫지 않았던 것일까? 안정수는 정신없는 밤이란 상념에서 퍼뜩 놀래 소파에 시선을 던진다.
‘없어?!’
잠들어 있어야 할 김우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안정수는 정신은 퍼뜩 깨어나며, 온 몸에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안정수는 재빨리 눈동자를 굴려 안방 문을 향하자 굳게 닫혀 있는 걸 발견했다. 역시 저곳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안정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억지로 힘을 쥐어짜내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잠들기 전과는 달리 어두웠던 거실. 하지만 유난히 달빛이 밝은 밤이었기에 그 달빛이 어디로 가진 않았는지, 다시금 요요한 달빛이 베란다 창문 너머로 두터운 커튼을 뚫고 스며들어온다. 동시에 어두웠던 거실에 달빛을 받아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
안정수는 베란다 너머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는 우두커니 서있다. 건장하고 큰 그림자가 주는 느낌은 아무리 봐도 남성의 것이었으며,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김우영처럼 보인다.
‘착각 이었나…….’
안정수는 맥이 탁 풀리는 걸 느낀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며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아무래도 그는 잔뜩 취해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잠시 베란다로 나간 것 같다.
‘아니면 담배 피우러 나갔겠지.’
이 어둡고 어디 있을지도 모를 재떨이를 남의 집 거실에서 찾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도 종종 술을 먹고 잠에서 깰 때에는 저렇게 베란다에 나가 몸을 식히고 들어와 다시 잠든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안정수는 잠시 몸을 일으켜 안방 문 쪽으로 다가선다. 굳게 닫혀 있는 안방 문 너머로 들려올 리 없는 기척에 집중해본다.
“…….”
시끄럽게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방해될 정도로 고요한 집 안. 안정수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며 다시 거실 한 구석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그가 저기 있는데 뭘 의심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정말 틀린 것 같다. 그가 깨어났을 때 자신이 이렇게 거실 한 편에 잠든 걸 발견했을 텐데 이렇게 뻔히 보이는 무대에 슬금슬금 올라가는 바보가 있을 리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 반동과 김우영 그가 없다는 걸 깨닫곤 화들짝 놀라며 온 몸을 긴장시켰던 탓일까? 그 긴장이 풀리자 더 이상 저항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피로가 몰려온다. 안정수는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래도 그가 베란다 너머에서 들어오는 걸 봐야겠다는 일념 하에 커튼 너머로 보이는 그의 그림자를 주시한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때문이었을까? 때때로 거실로 불어 들어오는 밤공기가 두터운 커튼을 흔들었기 때문이었을까? 흐릿한 안정수의 시야에는 김우영의 그림자가 때때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안정수가 가엽기라도 했던 걸가? 헛된 노력이라고 달님이 배려라도 해준 것일까? 다시금 달빛이 사그라지며 커튼 너머로 보이던 김우영의 그림자도 밤이 깊어 짙은 어둠속에 숨어버렸다. 어둠이 주는 편안함과 고요한 분위기가 안정수에게 수마를 선물해줬고, 심심하기까지 한 그 어둠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던 안정수는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살랑살랑 스며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가 커튼을 흔들고, 짙은 어둠이 잠든 안정수를 얼마나 휘감고 있었을까? 구름 너머로 숨었던 달빛이 또 다시 얼굴을 들이밀며 세상을 비추자 베란다 너머에 서 있던 김우영의 그림자가 다시금 거실에 드리운다.
안정수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증명하듯 똑같은 자세로 서 있는 김우영의 그림자.
하지만 어째서일까? 잠에 취해 초점이 맞지 않는 안정수의 시선에서만 흔들려야 할 김우영의 그림자가 착각이 아니란 듯이 조금씩 흔들린다. 벌어진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커튼이 흔들리기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
조금씩 흔들리던 김우영의 그림자가 한번 크게 흔들리더니 그의 그림자에 변화가 나타났다. 그의 어깨로 추정되는 곳 조금 아래에서 팔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응당 사람이라면 두 개 있어야 할 팔. 그림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커튼 너머로 흔들리는 그림자에는 팔이 3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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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급하게 쓴다고 썼는데 쓰면서도 스스로 장편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본래 이 작품을 이렇게 길게 쓸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라 늘리고 늘리다보니 점점 이상해 지는군요;;)
이 작품을 좋아하시기에 더욱 잘되길 바라며 쓴소리 하시는 분들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그럼에도 애정어린 쓴소리를 해주시는 분들, 즐겁게 읽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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