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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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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어딘데?" "응 진서에서 나와 사무실로 가려는 중인데." "나 좀 데리러 오면 안 돼?" "집 아니야?" "응. 집인데." "이 시간에 왜?" "나 절에 가려고." "밤에 절에 간다고?" "응. 철야기도 하거든." "무슨 교회도 아닌데 절에서 철야기도를 해?" "그런 게 있어." "알았다. 김 차장은?" "토요일이잖아. 당연히 시골에 갔지." "밤에 절에 가는 거 김 차장 그 양반도 알아?" "알아." "여기서 20분쯤 걸릴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내려온다. "절이 어딘데?" "응. 전에 갔던 커피숍 거기서 내려주면 돼." "그럼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이잖아." "응." "휴~" "왜 그러는데?" "거기라면 그냥 버스타고 가도 되잖아." "나 태워주는 게 싫어?" "당신도 생각해봐. 버스타고 겨우 10분이면 갈 거리이고, 어차피 버스 내려서 걸어가는 것과 내 차타고 가는 거리와 차이가 200미터도 안되는데 당신 태우려고 20분을 왔잖아. 그거 비생산적인 일 아냐?" "결국 나 태워주기 싫다는 말로 들리네." "내가 가까이 있었으면 이런 말하지 않는데, 당신이 어디 먼 곳에 가는 줄 알고 10k가 넘는 거리를 왔잖아. 내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겨우 버스 몇 정거장 당신 태우려고 20k가 넘은 거리를 왔다는 얘기잖아. 태워주기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차 세워. 내릴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내리긴 뭘 내려. 앞으로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았으니까 차 세워!" "다 왔으니까 그냥 가." "세우라고! 아니면 그냥 내릴 거야." "당신 뭐하는 거야! 사고 낼 일 있어?" 참 대책이 안서는 여자다. 내 말에 화를 내며 차의 문을 연다. 결국 내가 차를 세우니 혼자서 씩씩거리며 걷는다. 난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차창을 열고 타라고 몇 번이나 소리 쳤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한다. 결국 앞으로 차를 빼서 비상등을 켜고 그녀 앞에 서니 손으로 날 홱 젖히고 지나간다. "선 청라!" "……." "잠깐 서봐!" "놔!" "잠시 이야기 좀 비자." "놓으라고! 차도 싸구려에다 똥차면서 그 따위 차가지고 유세하기는! 나 더러워서 앞으로 그런 똥차 태워달라고 하지 않을 거니까 놔!" 아무리 저녁 시간이라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나 아는 사람이라도 지나갈까봐 결국 그녀를 더 이상 잡지를 못했다. 그녀를 보내고 차라리 이것으로 그녀와의 인연이 끝이기를 기대했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저히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향을 돌린 곳이 민락동……. 지은이가 떠난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아니 어쩌면 지은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내가 찾기가 힘이 들었던 윤희에게로 향했다. “자기가 어쩐 일이야?” “응.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당신 얼굴도 보고 싶고 해서.” “그냥 집으로 가 있으면 내가 갈 건데 가게까지 뭐하러와?” “당신 처음 만난 곳이 여기잖아.” “그래. 참 시간 많이 흘렀다.” “내가 당신에게 참 나쁜 놈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형님 때문에 자기가 힘든 것 충분히 짐작해. 만약 내가 형님처럼 되고 형님이 남아있었다고 하더라도 자긴 지금처럼 했을 거잖아. 그러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난 자기가 나를 기억해주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그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더 나쁜 놈이지. 당신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내 감정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니까. 그런데 혜진이 내 보내지 않을 거야? 사실 그 친구 때문에도 집에 가기가 불편해.” “혜진씨도 불쌍하잖아. 자기가 좀 이해 해줘. 그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기가 말하기 전에 나갔을 거야. 난 혜진씨가 혼자 있으면 언젠가 사고를 칠까 그게 겁이나. 만약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자기가 더 많이 힘들어 할 거니까. 그렇게 되면 자기를 잃게 될까봐 무서워.” “걔가 잘못되는데 내가 왜? 내가 책임질 일도 없는데.” “자기는 자기 스스로를 너무 몰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자기는 정말 견디지 못해. 절대로.” “당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라. 어떻게 이리 똑똑한 마누라가 있는지…….” “참 그리고 이따금 선영이 동생에게 전화라도 해주고 그래. 많이 힘든가 보더라.” “왜 뭐라고 해?” “자기 몇 달 동안 전화도 한통 해주지 않았다면서?” “지 남편하고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전화를 하면 흔들릴 수도 있어.” “아냐. 그건 자기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냥 일주일에 한번쯤 전화라도 해줘.” “그런데 당신이 꼭 지은이 닮아가는 거 같다. 잔소리 하는 게.” “형님이 안 계시니까 내가 우리 서방님 챙겨야지.” “암튼 나 내실에서 좀 자고 나올게.” “응. 푹 쉬고 있어. 뭐 따뜻한 거라도 줄까?” “아니 그냥 좀 쉬고 싶어.” 방으로 들어가니 매일같이 청소를 하였는지 깔끔했지만 예전 그대로다. 방을 둘러보면서 또 다시 내가 참으로 나빴다는 생각을 가진다. 언제 올지도 모를 서방을 기다린다고 매일같이 청소를 하고, 혹여 내가 이방에 들어왔을 때 뭔가 바뀌어져 있다면 내가 불편해 할까봐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놔둔 윤희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여인…….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나쁜 여자’ 그 책은 잘 팔려나갔다. 남자들의 입에서 보다 같은 여인의 입장인 4~50대 중년여성들이 오히려 그 책의 내용을 가지고 광분했다. 그년의 친구들도 그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친구로 지내왔던 그년에 대한 뒷담화를 할 정도였으니 제 3자인 이 땅의 여성들이 광분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것에 광분하지 않는다면 혹시나 타인들이 자신을 그런 류의 여자로 볼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으니……. “우리 이혼하자.” “......” “당신도 살아야 할 거니까 이집 팔아서 반으로 나누고, 애들은 내가 키울 거니까 그렇게 해.” “아니 애들은 내가 키울 거야.” “당신이 애들 키우면 그 애들은 나중에 어떻게 하라고? 그건 절대 안 돼!” “아니 내 딸들이야.” “이미 당신은 엄마로서 자격을 잃었어. 그냥 바람을 피운 것이라면 몰라도 대한민국에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해. 그런 상황에서 애들이 당신이란 여자와 함께 살수나 있을 거 같아?” “박 진호 그 개새끼 때문이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박 진호 그 사람을 욕해?” “그럼 당신도 내가 박 진호 그 새끼보다 더 나쁜 년이라고 생각해?” “이 세상에 당신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단순하게 바람을 피웠다면 나도 모른 체하고 넘어 갈수도 있어. 하지만 당신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망친 여자야. 지금까지 당신과 살아왔던 내가 무서울 정도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그렇게 죽일 년이야?” “당신 서 비서라는 친구와도 잤다면서? 그 이유가 뭐였어? 단순한 섹스상대였어?” “......” “한 사무실에 있던 서 비서와 자고도 어떻게 박 진호라는 사람을 유혹할 수가 있었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박 진호 그 사람 말처럼 당신 그 잘난 구의원 배지 달아보겠다고 당신 그 더러운 몸뚱이를 가지고 거래한 것 아니야?” “......” “난 당신이 더럽게 느껴져. 아니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차라리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라면 난 충분히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당신은 충분히 당신 인생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살아 왔잖아. 골프도 치고, 마사지도 가고, 그거 뭐야 요가라는 것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커피숍도 매일 다니고, 그림 공부한다고 해서 내가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었고. 그 돈들 다 내가 벌어들인 돈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것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뭐라고 한 적이 있었어?” “......” “난 당신에게 해줄 만큼 충분히 해줬다고 생각해. 그런데 당신은 그 알량한 배지를 달겠다는 욕심으로 부부간에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렸고, 당신 욕망을 위해서 당신이 기도하러 간다는 핑계로 찾아다녔던 중놈과도 즐기며 살았어. 그렇다면 나는 뭔데? 내가 당신 욕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서 그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야? 당신은 내 마누라였고, 내 딸아이들의 엄마였었어. 아무소리 말고 당신이 먹고살 돈은 챙겨 줄 테니까 이 서류에 도장을 찍어.” “난 못해! 아니 안 해!” “그렇다면 강제로 이혼하는 수밖에 없어. 당신 알아서 해. 어차피 법으로 해결해도 내가 당신이란 여자에게 줄 위자료는 이 집의 절반밖에 없어.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그만큼 주지도 않아도 될 거야. 당장 이집을 내놔봐야 소문 때문에 팔리지도 않을 거니 당신은 이제 당신 친정으로 가주면 좋겠어. 대신 당신이 내 말대로 한다면 이집을 담보로 대출 받아서 집값의 절반은 현금으로 줄 테니까 당신이 선택해. 더 이상은 나도 당신에게 우롱당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빠른 시간 내에 집은 비워주면 좋겠어. 언제까지 애들을 당신이라는 여자와 살게 할 수도, 그렇다고 바깥에서 재울 수도 없으니까.” 김 차장은 그년에게 퍼붓듯 말을 마치고 대문을 나섰다. “쨍그랑!” 그년은 닫히는 문을 향해 빈 소주병을 던지고 그것은 문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마치 그년의 인생처럼……. 김 차장이 나가고 나자 그년은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뚜~우~ 뚜~우~ 뚜~우~’ 몇 차례 신호가 울렸으나 상대방이 받지를 않자 그년은 다시 다른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고 그 사람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지 힘없이 전화를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아이들 방으로 가서 휴대폰을 가지고 나와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난데 왜 전화를 안 받는데?” “언니. 전화 끊으세요. 남편이 와 있어요.”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제가 뭘요?”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언니 앞으로 저한테 전화하지 말아주세요.” “뭐? 왜?” “언니 알면서 왜 그러세요? 전화 끊을게요.” “야, 이 나쁜 년아.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말조심하세요. 자꾸 그러시면 저도 못 참아요.”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는데?” “뭘 어떻게 했어요? 같이 돈 나눠 내고 커피마시고 놀기 밖에 더했어요? 언니가 돈 내준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네년들 다 죽일 거야?” “진짜 이 여자 보자보자 하니까 개판이네. 쓰레기 같은 년! 넌 갈보보다 나쁜 년이야.” “뭐라고. 이 개 같은 년아” “뚜~ 뚜~ 뚜~” “엉~엉~ 이 개 같은 년들이 나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다 죽여 버릴 거야. 개 같은 년들.” 상대가 전화를 끊은 모양이다. 그년은 무엇이 억울한지 엉엉 울면서 휴대폰을 벽으로 던져버린다. 휴대폰은 벽을 맞고 떨어지고, 휴대폰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한동안 엉엉 울던 그년은 다시 소주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년의 전화를 받았던 그년의 동생이란 여자가 전화를 걸고 있다. “여보세요. 진경이 언니?” “응. 누구야?” “언니 저 지난 번 정애언니랑 같이 만났던 성희예요.” “아. 성희. 그래 잘 지내고 있어?” “예. 별일 없으시죠?” “응. 그런데 무슨 일로?” “그 여자에게서 전화 오지 않았어요?” “아까 왔는데 받지 않았어.” “그럼 다른 번호로 와도 받지 마세요. 저도 전화가 오기에 무시했는데 조금 있으니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였는데 완전히 미쳐 날뛰던데요.” “그년이 성깔이 보통이 아니야. 몇 번이던데?”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응. 고마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예. 언니. 들어가세요.” 그년의 친구 진경이란 여자가 성희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정애니?” “응. 이 시간에 웬일이야?” “청라 그년 전화 왔었지?” “응. 그년 전화기에 끊기는 뭐해서 안 받고 그냥 전화기를 엎어 두었는데.” “잘했다. 그런데 다른 전화로 전화를 해서 미친 개지랄을 하더란다.” “누가?” “네가 지난번에 데리고 나왔다는 후배 있잖아. 걔한테 전화를 해서 개지랄을 떨더라 던데.” “그 번호 몇 번이야?” “응. 성희가 문자를 보낸다고 했으니까 문자로 보내줄게.” “고마워.” “고맙긴 뭐. 괜히 네가 엮이게 되면 나까지 피곤해지니까 그렇지.” “아무튼 그 망신을 당하고도 우리한테 전화할 정신은 있나보네.” “미친년 해도 적당히 했어야지. 저래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너도 그년에 대해서 모른 척해. 괜히 엮이게 되면 우리도 나쁜 년 취급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지. 혹시 기자들이라도 우리가 같이 어울렸다는 것 알게 될까봐 걱정이다.” “어쩌다가 미친년 하나 때문에 우리까지 이게 무슨 꼴이야. 우리 신랑은 요즘 날 죽이려 든다.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이혼이라고 난리야.”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야. 나도 똑 같은 년이라고 하기에 대판 싸우기까지 했었는데.” “그런데 절은 어떻게 할래?” “절에 가면 신랑이 가만히 있기나 하겠다. 스님, 아니 그 주지라는 중도 나쁜 놈이긴 마찬가지이던데. 어떻게 자기 절에 오는 신도하고 붙어먹나? 우리는 바보같이 눈치도 못 채고 있었고.” “이제는 절에도 마음대로 못가겠다. 나중에 조금 조용해지면 남편하고 좀 큰절에 다닐까 생각 중이야.” “생각 잘했다. 괜찮은 절 알게 되거든 나한테도 이야기 좀 해줘. 같이 다니자.” 아무튼 그렇게 그년은 세상으로부터 지워져 가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그년은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년 가진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년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몸뚱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이제 내 영혼이 이승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머지않았다. 육신을 떠난 지 한 달을 넘겼으니 내가 새로운 세계로 가기위해서는 보름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리라. 그 시간이 오기 전에 그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내야 하는데. “자기 잘 잤어?” “또 내가 너무 깊이 잤었나 보네. 몇 시야?” “한시 좀 지났어.” 정말 푹 잤다. 6시간 가까이 잠을 잔 것이었다. “당신도 피곤했을 건데 그냥 옆에 누워있든지 아니면 깨우지 그랬어?” “나야 항상 하는 일인데 피곤할 게 뭐가 있어. 자기가 이렇게 누워 자는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러네. 여기서 잠을 자보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엄청 오래 되었을 거야.” “그냥 다시 헐고 룸으로 만들걸 그랬다.” “피~ 그렇게 했더라면 오늘 자기 여기서 자지 못했을 거잖아.” “아깝잖아. 이 공간이면 룸을 두 개나 더 만들 수 있는데.” “아깝기는 뭐가 아까워? 사랑하는 서방님이 오늘처럼 푹 잘 수 있게 만든 방인데. 그것만으로도 이 방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거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이구 문디. 당신은 왜 돈 욕심이 없어. 조금씩은 욕심도 내고 그래봐.” “이방 없애고 룸 만든다고 해봐야 크게 돈 벌릴 일없어. 그것보다는 아주 이따금씩이라도 자기가 여기 와서 잠시라도 푹 쉬고 갈 수 있다면 그게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일이야.” “아이고 모르겠다. 당신 고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으니까.” “헤~ 그래도 나 밉진 않지?” “당신이 밉긴 왜 밉냐?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구석이라도 있어야 미워하지.” “고마워. 난 자기가 내 옆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자기가 날 잊지 않고, 버리지 않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기 배고프지 않아?” “조금 참으면 되지. 혹시 당신 배고픈 거야?” “응. 조금 출출하네.” “그럼 뭐 먹으러 나가자.” 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운전석 문을 여니 자신의 차로 가잔다. 그리고 윤희가 운전석에 앉았다. “내려. 내가 운전할게.” “조금 멀리 갈 건데. 자기 피곤하니까 그냥 내 옆에 앉아서 가.” “그렇다면 당신이 더 피곤하지. 나야 6시간을 넘게 푹 자고 일어났으니까. 빨리 내려.” 결국 윤희는 내말에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옮겨 탄다. “어딜 가려고 그랬어?” “경주. 지난번 자기랑 갔었던 그 해장국집.” “한번쯤은 몰라도 당신 같은 사람이 가기엔 좀 그렇지 않아.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고.” “나 같은 사람이 뭐? 여자라서? 난 자기생각만 나면 그곳에 가고 싶더라. 그렇다고 혼자 갈 수도 없고.” “그럼 당신이 전화를 하지 그랬어.” “자기 마음이 어떤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전화를 해.” “당신 내 마누라 맞아? 지은이나 당신이나 똑 같은 내 마누라일 뿐이야. 내가 당신과 지은이를 차별했었나?” “그런 말 아니잖아. 만약 형님이 그대로 있었다면 언제든지 내가 자기에게 전화해서 데리고 가달라고 이야기를 하였겠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나만 자기를 독차지한 것 같아서 형님에게도 미안하고, 또 민지 마음도 아플 거 같고.” “지은이가 사람 여럿 죽이누먼. 당신까지 그런 생갈 할 일은 없다. 그냥 편하게 생각해. 지은이도 당신이 예전처럼 생활하길 원할 거야.” “민영이가 자기에게 전화를 했다던데 전화 받았어?” “응. 좀 있으면 나올 거라고 하던데.” “피~ 꼭 자기 불리한 말은 쏙 빼고 이야길 하고 그래.” “불리한 거 뭐?” “민영이가 당신 일본에 와서 좀 쉬다가 가라고 했다면서?” “나 물 밖으로 나가는 거 싫다.” “고집 그만부리고 나랑 다녀와. 민지도 데리고. 민영이가 아빠 꼭 모시고 오라더라.” “나 일본말 하나도 못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 뭘 해.” “딸이 그렇게 부탁하는데 그 부탁하나도 못 들어 주냐?” “어차피 다담달이면 나올 건데 뭐 한다고 경비 써가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동네에 가서 노냐. 꼭 그런 생각이면 아예 민영이 나오면 식구들 모두 일주일 동안 여행이나 다녀오는 게 훨씬 좋지.” “자기가 그럴 시간이나 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씩이나.” “요즘 바쁜 일 없어.” “하지만 누군가에게 전화 오면 바로 또 가봐야 하잖아.” “전화 꺼두면 되지.” “자기가 어지간히도 그렇게 하겠다. 그런 거짓말은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 “아무튼 난 일본은 안가.” “그럼 나중에 민영이 나와 여행가면 휴대폰은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그렇게 해도 돼?” “알았다.” “그럼 진영이 형님 전화 외에는 절대 바꿔주지 않을 거야. 약속 해.” “알았다. 집사람은 왜 바꿔 주냐?”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경주에 도착했다. 새벽이어서인지 경주 시내는 가로등 불빛만 외롭게 빛나고 있었다. 한번 오기 시작하니까 경주가 또 자주 찾는 그런 곳이 되었다. 아니면 집사람과 윤희 두 사람에게 서로 통하는 무엇이 있었든지……. 팔우정 로터라에 있는 해장국집들도 조용하긴 마찬가지였다. 손님들도 뜨문뜨문 자리하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가자 아주머니는 졸린 눈으로 우릴 맞고 있었다. “콩나물, 선지 한 그릇씩 주세요.” “아니 나도 선지해장국 먹을래?” “당신이?” “응. 자기와 같은 거 먹을 거야.” “정말 당신 지은이 닮아 가냐? 아님 지은이처럼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냐. 그냥 나도 이제 선지해장국이 맛있게 느껴져서 그래. 어차피 이런 기회 아니면 먹어 볼 일도 거의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당신 자신 말고는 다른 외적인 일에 너무 신경 쓰지는 말아. 당신은 당신 자체로만으로도 내겐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사람이니까.” “고마워~” “고맙긴. 내가 고마울 일이지. 당신이라도 없었더라면 내가 버텨내기 힘들었을 거야.” 희야가 선지해장국을 떠먹는 모습이 참 예뻤다. 난 희야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이 친구와의 인연에 대해 행복함을 느낀다. 만약 희야가 내 인생에 없었더라면 내 인상은 조금 더 삭막했을 것이고, 또 지은이가 그리되고 난 이후에 혼자 버텨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희야를 만난 것이 내 전생의 업보가 아닌 혹시나 내가 행했을 선한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도 가져본다. 나란 놈이 어떻게 착했을 거라고.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나오니 속이 든든했다.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던 날씨도 그런대로 참을 만 했고. “어디로 갈까?” “그냥 부산으로 내려가.” “해장국만 먹고 바로 간다고?” “응. 그냥 내려가자.” “여기서 자고가지?” “아니 나중에.” 결국 윤희의 말대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집에 도착해 윤희를 내려주고 가게로 가려니 윤희가 내 팔을 잡는다. “자기 오늘 여기서 자고 가.” “이 시간에 들어가면 민지 깰 건데.” “깨면 뭐 어때? 오히려 반가와 할걸.” “그래도 좀 그렇다.” “어차피 나 혼자 들어가도 깰 거면 깨. 그냥 같이 올라가자.” 윤희와 발소리를 죽여 가며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윤희는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더니 갈아입을 속옷과 잠옷을 내온다. 난 속옷을 받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왜 먼저 자지 않고?” “피~ 자기 방이나 알아?” “왜 그새 바꿨어?” “응.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서방이 미워서 골방으로 다 옮겼다.” 윤희를 따라가니 예전 지은이가 사용하기로 했던 방이다. “앞으로 여기가 자기 방이야. 한 달에 한번이라도 와서 자고 갔으면 좋겠다.” “알았어. 노력할게.” “나 이제 건너갈게. 푹 자.” “당신 여기서 자지 않고?” “사실 나도 자기랑 안고 자고는 싶지만 나 역시 불편해. 그냥 자기만 여기서 자.” 윤희가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방을 나선다. 난 약간의 아쉬움을 간직한 채 이불 속으로 내 몸을 뉘였다. “아빠. 잘 주무셨어요?” “응. 민지도 잘 잤어?” “네. 아빠 오셨으면 깨우시지…….ㅠㅠ” “임마.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면 어떻게 하냐?” “선배 오랜만이네요.” “응. 잘 지내고 있지?” “예. 선배 얼굴 오랜만에 보니 좋네요.” “넌 언제 철들래? 빨리 괜찮은 사내 놈 하나 잡아서 시집이나 가.” “피~ 선배 같은 남자 나타나면요. 빨리 식탁으로 가세요. 아침 드셔야죠.” “난 별 생각 없는데. 새벽에 해장국을 먹었더니.” “자기 빨리 오세요. 혜진씨가 자기 아침먹이겠다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아침 밥상이 푸짐했다. 도대체가 이 많은 재료들이 어디서 났는지? “당신들 매일 이렇게 진수성찬이야? 살림 남아나는 게 없겠다.” “피~ 혜진씨에게 물어보세요. 혜진씨하고 민지 때문에 난 잠 한숨도 못 잤구먼.” “왜?” “당신 주무시러 들어가고 방에 들어가려니까 민지하고 혜진씨가 자다가 나와서 자기 아침 반찬 준비해야 한다고 난리치는 통에 자갈치까지 다녀왔거든요.” “참 난리다. 그럼 세 사람만 새벽에 나갔다가 온 거야? 겁도 없이.” “뭐 우리 셋이서 가는데 겁이 날 일이 뭐가 있어요. 자기 덕분에 우리 오랜만에 데이트 잘했는데. 빨리 드세요. 식기 전에.” 윤희의 재촉에 난 숟가락을 들었고, 윤희와 혜진이, 그리고 민지도 서둘러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숭늉까지 한잔 들이 킨 후, 우린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따스한 커피를 앞에 두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결국 민지는 첫 강의까지 빼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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