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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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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오늘 저녁에 바쁩니까?” “바쁠 일이 뭐 있겠나. 와 무슨 일 있나?” “놀러나 가자고요.” “문디. 선거 깨지고 놀러 가면 사람들 욕한다. 조용히 고개 처박고 ‘나 죽었습니다.’ 하고 살아야지.” “아이고 선거 우리가 졌습니까? 우리야 할 만큼 했는데요.” “그래도 사람들은 그리 생각 안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하지.” “아무튼 오늘 저녁에 잠시 보~입~시더.” “그려. 나중에 연락 혀~” 사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다가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놀지 못해서 좀이 쑤셨던 모양이었다. 워낙에 놀기를 좋아하는 후배이니까. “아직 사무실에 계셨네요?” “예. 이 시간에 어쩐 일로요?” “오늘 천 사장님과 만나기로 약속하셨잖아요.” “그걸 어떻게?” “사실 오늘 언니들하고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언니들이 약속펑크를 내서 친구와 제가 중간에 붕~ 떴거든요. 그렇다고 신랑에게 허가까지 받았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천 사장님에게 술 한잔사시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왜?” “박 비서님과 같이 마시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제가 좋다고 한 거죠.” “선 여사님, 저 술 안 마시는 것 잘 아시잖아요.” “그게 특별히 문제가 되나요? 그냥 술자리에서 분위기 맞춰 노시면 되는데.”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뵙고 또 뵙네요.” “예. 어서 오세요.” 그때서야 그년의 친구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내가 태워줬던 그 사람인 것 같았다. 갑자기 후배 놈에게 짜증이 밀려왔다. 놀기를 원한다면 그냥 우리끼리 편하게 놀든지 여자가 필요하다면 그냥 여자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지 친구 놈과 만나면 되었을 일을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지. 아무튼 그 이유로 난 그년과 그녀의 친구 진경이라고 짐작되는 여자를 태우고 남천동으로 향했다. 아직은 저녁 전이라 저녁을 먹으러 가야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결국 수영구청 앞에 있는 생선정식을 하는 그 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남천동에 도착하셨죠?” “응. 밥 먹고 있어.” “그럼 식사하시고 ‘친구’에 가 있으세요. 집에 일이 있어 조금은 늦을 것 같습니다.” “그려. 그렇게 하지.” 후배와 전화통화를 마치고, 디저트(?)로 나온 숭늉으로 입을 헹군 후 식당을 나와 ‘친구’로 향했다. 내가 가장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노래주점. 그곳에 도착해 이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장님은 맥주와 안주들을 준비해서 내오고, 난 항상 그래왔듯이 커피를 한잔 부탁했다. 아마도 술집에서 커피를 찾는 미친놈은 별 없을 것이지만 내가 가장 편하게 마시는 음료가 커피이니……. ㅋㅋ “자리 룸으로 옮기면 안돼요?” “왜요? 여기 편하지 않습니까?” “사람들 들어오면 불편해서요.” 결국 손님 하나도 없는 시간에 찾아와 사장님께 자리를 옮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장님은 웃으면서 자리를 옮겨주셨지만 양주도 아닌 맥주를 마시는 손님이 룸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 가게를 경영하는 사장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는 일일 것이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또 그년은 냄새가 어쩌고 하면서 난리를 친다. 결국 사장님이 방향제를 가지고 와 한참을 뿌리고 난 이후에야 잠잠해졌지만. 반주가 나오고 내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노래들이 이어지고, 또 그년과 친구란 여자가 내 존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눈빛을 하여 나는 담배를 핑계로 아예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왜 나와 계세요?” “아. 담배 때문에요. 그리고 저런 노래는 제 체질도 아니고요.” “그렇긴 하시겠네요. 여자 친구는 아니신 것 같던데요?” “예. 지역 당원하고, 그 친구입니다. 그런데 영업방해를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기분 좀 상하셨더라도 이해 좀 해 주세요.” “아뇨. 장사를 하다보면 별 사람 다 있는데요. 저만하면 그냥 넘어갈만합니다. 박 비서님 지역의 당원이기도 하고, 천 사장님에게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데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술집도 없고, 저 양반들 어떻게 할 방법도 없어서요.” 그렇게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흐르자 그때서야 천 사장이란 후배가 나타난다. “이 양반아. 저런 여자 둘을 나보고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러냐?” “죄송합니다.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시외에 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 나와 계세요?” “내가 감당이 불감당이니 나와 있지. 도대체가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싸가지가 없어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여기 사장님한테 물어봐. 내 입으로 어떻게 욕을 하겠노.” 내 말에 노래주점 사장님은 그냥 빙긋이 웃으며 천 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예 천 사장은 상황을 짐작했는지 호들갑스럽게 입을 놀리면서 노래주점 사장님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고 노래주점 사장님 역시 별일 아니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잠시 룸에 앉아 그들의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던 천 사장이 그들을 바깥으로 끌어낸다. 실랑이 끝에 밖으로 나온 그들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쀼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천 사장은 내가 항상 부르는 노래를 신청하고선 내 등을 떠밀어 무대로 올린다. 하긴 내가 억지로 밀어낸 것도 아니니 내가 불편해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끝이 나자, 내가 내려오기도 전에 노래주점 사장님이 턱도 없이 앵콜을 연발하며 ‘영영’을 올리고 노래 부를 것을 강권한다. 결국 두곡을 마치고 내려오고 다음은 천 사장의 노래……. 그렇게 노래주점 ‘친구’에서의 상황은 끝이 났다. 그 여자들이 집에 가야겠다는 그 말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밤길이었기에 그들을 집까지 태워다 주고 오는 길에 천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 미안합니다.” “당신이 뭘?” “전 그렇게 싸가지가 없을 줄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제가 아는 동생들을 불러냈을 건데, 아무튼 죄송합니다.” “됐네. 괜히 엉뚱하게 당신 돈만 깨졌잖아. 앞으로는 그냥 이상한 사람들 부르지 말고 편하게 놀면 되지.” “예. 다음에 예쁜 여자 생기면 형님께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이사람 또 엉뚱한 소리하고 있네. 당신도 알다시피 난 여자 챙길 여유 없는 사람이야. 여자도 여유가 있고, 최소한 돈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지 나 같은 빈털터리 소개했다가 욕 얻어먹으니까 엉뚱한 소리는 하지도 마.” “아무튼 죄송합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려. 고마워. 내일 통화하세.” 후배의 전화에 답답하던 마음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도대체 여자들은 자신이 지닌 가치는 도외시한 채 왜 공주대접만 받으려 하는지 답답했다. 공주대접을 받으려면 최소한 공주가 가지는 예의와 기본적인 교양은 갖추고 난 이후에 공주인양 해야 할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심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거리의 여자와 무에 다를 바 있을 것인가? 결국 그년에 대한 경계심을 지속 시켜야 했음이 옳았다. 지금에 와서 예전을 돌이켜 보자면…….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 어리석음이 오늘의 이 비참함과 쪽팔림을 감내하게 만들었으리라. 예전의 기억을 반추하는 상황에서 내 몸은 119소방대원들의 손에 의해 조심스럽게 끌어올려지고 그들은 내 몸을 옥상바닥에 놓인 이동용 들것에 누인다.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또 다시 경찰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내가 뛰어 내렸던, 아직 밧줄이 그대로 묶여있는 그곳을 시작으로 경찰관들은 노란색 비닐로 된 police라인이란 것을 치고 내가 누워있는 들것으로 다가온다. "여기요." 젊은 경관이 소리를 치자 모두들 우르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왜? 뭐 나온 게 있어?" "이거요. 프린트 물을 책으로 엮은 것 같은데 소설 같기도 하고……." 젊은 경관이 내가 소설형식으로 써둔 그것을 번쩍 들자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이 우르르 몰리고, police라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뭔가 싶어서 고개를 쭉 빼서 쳐다본다. "이게 뭐야? 소설 아니야?" "예. 유서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구분이 잘 안되는데요." "참내 그 양반 죽으려면 곱게 죽지, 골치 아픈 숙제를 주고 죽었네. 아무튼 그거 잘 보관하고 있다가 본서에서 오면 넘겨줘."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목을 매달았을까요?" "그거야 죽은 양반이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뛰어내려서 온 몸이 다 터져나가 파편이 이리저리 흩어진 시체보다야 훨씬 좋구먼." "아.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드디어 본서에서 형사들이 도착했다. 이른바 과학수사팀이니 뭐니 하는 친구들도. 그들이 도착하여 현장의 사진들을 찍고, 내가 누워있는 들것으로 다가와서는 하얀 시트를 벗겨낸 채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살아서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는데 죽어서, 그것도 아주 흉측한 모습인 지금의 이 얼굴이 사진으로 찍히기는 정말 싫은데, 이미 육체에서 떠난 내가 남겨진 육체를 움직여 카메라를 피해서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형사들은 내 몸을 헤집듯 찍고 나서 시트를 덮어준 후, 내가 남겨놓은 소설과 지갑, 내가 목을 맨 밧줄, 심지어 내가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피우고 던져 둔 담배까지 비닐에 넣고서 자리를 떴다. 119 대원 둘이서 내가 누운 들것을 앞뒤로 들고 옥상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1층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경찰관들이 쳐놓은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police라인 바깥에서 목을 빼어들고 하얀 시트에 가려진 나를 바라보며 웅성이고 있었다. 그냥 출근이나 할 것이지 1층 길에서 나를 처음 발견한 그 사람조차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육신은 119대원들의 손에 의해 구급차에 실려 그 자리를 떠났다. 본서에서 나온 형사들은 그년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 그년의 남편과 그년에게 질문공세를 벌이고 있었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인 그년의 남편은 잘 모른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었고, 그년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만 있었다. 결국 형사들은 더 이상의 질문을 단념하고 그년의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당신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박 진호 저 사람이 왜 여기서?" "몰라요! 난 모른단 말이에요!" "소리만 지르지 말고 저 사람이 왜 여기서, 우리 집 창에 목을 매달았냐고? 내가 저 사람하고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니니 나에게 원한을 가질 일도 없으니 당신하고 관계된 것 아니야?" "난 몰라! 난 모른다고!" 그년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모른다는 말만 연발하다가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년의 손에 잡힌 물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결국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의 유리창이 깨지면서 내려앉았다. 아마도 저 유리창을 갈아 끼우려면 돈이 제법이나 깨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후련함과 고소한 마음이 밀려왔다. '좀 더 던져' '저 TV도 박살내고, 네년이 천만 원씩이나 주고 샀다고 자랑하던 그 소파도 찢어버리란 말이야!' '샹들리에 저것도 부숴버려!' 난 그년의 귓가에 입을 대고 그년이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라고 충동질 했다. 그런데 그년은 내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별로 돈이 되지 않을 것들만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내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이 집에서는 이제 별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쓴 그 소설들이 기자들의 손에 의해 세상에 뿌려지고 나면 그년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기 힘들어지겠지. 그 전에 저 불쌍한, 저년의 남편이 개망신을 당하기 이전에 이혼을 해야 할 건데……. 마누라 하나 잘못 얻어서 지금까지 속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억울할 것인데 망신까지 당해야 하다니……. '아무튼 그건 저 양반 사정이고 내 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겠다.'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난 이미 내 몸이 있는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 연락을 했는지 안면이 있는 기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집사람과 동생이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불쌍한 여자……. 하필이면 나 같은 놈을 만나서 평생을 마음고생을 하고, 돈조차 풍족하게 써보지도 못한 불쌍한 여자. 내 작전대로라면 아마 내가 유서형식으로 남긴 이 소설이 집사람과 딸아이를 풍족하지는 못하겠지만 웬만큼은 먹고살 수 있게는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내가 지금까지 딸과 집사람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남편 노릇과 애비 노릇의 일부분이라도 해주는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집사람의 극렬한 반대와,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책상위에 두고 온 아내와 딸에게 보낸 편지로 하여 내 몸이 찢기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집사람은 내 죽음에 슬픔이 배인 얼굴을 하고서도 의외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나약하게 느껴지면서도 당찬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녀…….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녀 또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불쌍한 사람……. '미안하다. 당신과 우리들의 딸에게는 정말 죽도록 미안하지만 내가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쁜 남편, 나쁜 애비를 용서해라.' 세상 누구에게도 나의 이 행동이 미안할 일이 없었지만 아내와 딸아이에게는 무릎을 꿇고서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고, 내 어머니와 동생들이 받을 충격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냥 내가 죽고 난 이후에도, 예전과 같이 한 가족으로서 정을 지니고 서로를 위해가면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아내는 내 행위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 수도 있겠지만 내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니 어쩌면 나의 이 행동을 다른 한편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기대도 해본다. 어느새 관공서에서의 절차가 끝이 났는지 내 육신은 집사람과 동생의 손에 의해 본가 근처에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이젠 나도 이생의 인연들과 작별을 하고 먼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딸아이, 내가 사랑하는 우리 딸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이 한스럽다. 빌어먹을 그년 때문에……. “김 형사님. 유서가 아닌 소설이라면서요?” “박 기자님 아직은 안 됩니다.” “아이고 우리사이에 그런 섭섭한 말씀하기 있습니까? 언질만 약간 주세요.” “전 잘 몰라요. 팀장님이 모두 가지고 계셔서요.” “대충 보셨잖아요. 그냥 자살도 아니고, 그리고 그 죽은 양반이 완전한 일반인도 아니라면서요. 소스 약간만 주세요. 아니면 캡한테 깨집니다.” “정말 저는 별로 아는 게 없고 팀장님 한번 만나보세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실 겁니다.” “다른 기자들 다 아는 게 무슨 기삽니까. 딱 하나만 알려주세요. 절대 김 형사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비밀로 할 테니까요.” “저 진짜 모른다니까요.” “김 형사님. 저 밥줄 떨어지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십니까? 이번만 딱, 이번만 한번 부탁합시다.” “박 기자님 진짜 제가 아는 게 전혀 없다니까요.” “아까 옥상에서 한번 훑어 보셨다면서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에이~ 현장에 있던 사람 말이 젊은 친구가 찾은 걸, 김 형사님이 받아서 읽어보고 소설 어쩌고 하셨다면서요?” “참내. 나도 대충 봐서 몰라요. 그냥 소설같이 쓰기는 했습디다.” “어떤 내용?”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몰라도 한 여자에 대해 증오심을 품은 내용이었습니다.” “혹시 그 아파트?” “그거야 모르죠. 그 아파트 주민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최초 신고자 역시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을 했으니까요.” “15층 이었죠?” “예.” “고맙습니다. 잘 풀리면 내가 밥 찐~하게 한번 살게요.” “아무튼 나는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박 기자님 만난 적도 없고요.” “당연하죠. 고맙습니다.” 박 기자라는 친구는 형사와의 이야기를 끝내고 부리나케 자신의 차로 달려간다. 아마도 그년의 집으로 가는 것이겠지. 김 형사는 박 기자란 사람이 떠나고 난 이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김 형사. 잠시 이리로 와 봐.” “예. 팀장님.” “혹시 본청 정보과 OO당 담당이 누군지 알아?” “정보과 서 형사에게 물어보면 알겁니다.” “그럼 서 형사 빨리 좀 오라고 해.” “무슨 일이?” “자칫하면 골치 아프게 생겼어.” “왜요?” “사망한 사람이 OOO씨 비서고, 최초신고자 부인이 현역 구의원이라네.” “예? OOO씨요?” “응. 시끄럽게 생겼어.” “와 시팔 하필이면 우리 관내에서 뒤지고 지랄이야.”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지금부터 기자들 조심하고 직원들 전부 입조심 시켜.” “예. 팀장님.” “야! 시발 저거 뭐야?” “저게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팀장이 큰소리로 고함을 빽 지른다. 형사계 직원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TV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TV에서는 조금 전 김 형사에게 언질을 받았던 박 기자라는 양반이 마이크를 잡고, 그년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리포트를 하고 있었다. “볼륨 올려봐.” 팀장의 지시에 가까이에 있던 직원이 TV의 볼륨을 끝까지 올리고 모두 박 기자의 리포트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잠시 전, 동구 범일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엽기적인 자살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자살한 故 박 모 씨는 OO당 A 모 전의원의 비서로서 활동해 왔으며, 오늘 자살을 기도한 A아파트 15층에는 현재 OO당 소속 구의회 의원인 S의원의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오늘 자살한 박 모 씨는, S의원 남편의 신고로 발견되었으며 박 모 씨는 자살현장에 A4용지 약 50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형식의 유서를 남겨놓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박 모 씨가 자살한 아파트의 CC-TV화면 분석결과, 박 씨는 오늘 새벽 5시경 자신의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긴 후 집을 나서 오전 6시경 당 아파트에 도착하여 옥상으로 올라간 후, 현장에서 담배를 한 개비 피운 후, S의원 남편의 출근 시간에 맞춰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현재 유서의 내용과 현장에 남긴 A4용지 500매 분량의 원고를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브리핑할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발표 되는대로 즉시 여러분들께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리기로 하겠습니다. 현장에서 AAA방송 박 성호기자입니다.” “누가 얘기했어?” 팀장의 고함에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누가 이 사건의 발설자인지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발설자인 김 형사 역시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좌우를 훑어보며 마치 발설 자를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팀장님 그 소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아직은 확실히 모르겠지만 치정문제 같아.” “혹시 사망자와 S 의원이요?” “아마도.” “골 때리네요. 사실로 밝혀지면 또 세상이 떠들썩해지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이번 건은 보안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해. 자칫 우리가 구설수에 오르기만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번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모두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무조건 입에 지퍼 채워. 기자들 절대로 만나지 말고. 알았나?” “예. 팀장님.” 동부서 형사계는 단순 자살사건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결과가 나와 자신들의 입지가 불편해질 것을 걱정하는지 보안에 급급해 하고 있었다. “자 모두 회의실로 모여 봐. 그리고 문 닫아 걸고. 의경 너는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서장님이 오셔도 마찬가지야.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뭐 좀 나온 게 있습니까?” “골 때리게 생겼다. 자칫하면 우리가 죽든지 아니면 선 의원이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당할 일이야.” “정말 그 정도입니까?” “양이 엄청 많아서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훑어본 결과가 그래. 사망자가 특별한 원한이 없다면 그렇게 까지 적나라하게 써 놓았을 수가 없어. 그 양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선 의원은 완전히 인간쓰레기 수준이니까.” “선 의원인 건 확실합니까?” “청라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니잖아. 그리고 선 의원의 이름이 청라이고, 또 그 집 창문 밖에 목을 매달았고.” “그럼 사망자와 선 의원이 깊은 관계였다는 것은?” “그 양반 글에 섹스를 한 사실까지 묘사되어 있으니까 당연하겠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선 의원 공천에 사망자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야. 공천을 받기위해 사망자에게 사랑을 빌미로 몸을 제공하고, 선 의원에게 속은 사망자는 선 의원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공천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을 하였다는 거지.” “.....”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야. 사망자가 갈등을 느낀 이유가 선의원이 사망자에게 몸을 주기 이전에 당시 OOO 전 의원의 또 다른 비서에게 똑 같은 행위를 했고,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사망자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선 의원이 자신을 배신하였다는 것이지.”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선 의원 그 여자 창녀나 다름없네요.” “응. 사망자도 그 여자가 결국은 창녀였다고 표현해놓았어.” “참 그런 여자가 아무리 기초의원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대표자라니 우리 신세가 처량하네요.”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 건이 바깥으로 드러나면 압력이 만만치 않을 거야.” “팀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 정보과 서 형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시경 정보관 이야기를 들어봐도 사망자가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 모시던 양반이 계속 낙선을 했지만 의리도 있고, 그렇다고 거물을 모시고 있지만 거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네. 한마디로 아까운 사람이라고 하더군.” “여기서 대충 덮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어차피 정치권이야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 싸우는 것처럼 쇼를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서로 덮어주려고 할거니까.” “그럼 사망자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힘없는 우리가 어쩌겠나. 위에서 덮으라고 하면 덮을 수밖에.” “팀장님은 덮으실 생각입니까?” “이 사람아,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나?” “미친 척 하고 흘리지요.” “그러다 누구 목 날아가는 거 보고 싶어? 김 형사 당신이 날 먹여 살릴래?” “사망자 그 양반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면 의원인지 지랄인지 하는 그 여편네가 완전히 잡년이라는 말 아닙니까? 그런 년이 의원입네 하고 설치고 다니는 꼴 역겹지도 않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양반 때문에 징계를 먹을 수는 없잖아.” “팀장님 그 사건 저에게 주시지요.” “김 형사 당신이 왜?” “저야 그 건을 흘려도 요령껏만 흘리면 정직 정도밖에 더 먹겠습니까?” “어떻게 하려고?” “박 기자에게 슬쩍 훔쳐가라고 하지요.” “그 원고를?” “그 박 기자가 제 책상에 와서 그걸 슬쩍 훔쳐가서 사진으로 찍고 되돌려 놓게 하는 겁니다. 박 기자하고는 어느 정도 통하니까 그 정도는 가능할겁니다. 어차피 사건 서류를 책상서랍에 놓아두었는데 그걸 기자가 훔쳐갔다가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면 크게 징계 먹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정직 1~2개월은 먹을 건데?” “그 정도야 감당해야죠. 죽은 사람 억울함은 풀어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럼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난 모르는 일로 하세. 자네 뒤는 내가 요령껏 봐줄 테니까.” “그만큼만 해주시면 됩니다. 어이~ 너들 오늘 팀장님 말씀 듣지 못한 거다. 알겠지?” “예. 형님.” “우리 억울하게 죽은 사람 원한도 풀어주고 인간 같지도 않은 게 의원이랍시고 꺼떡거리는 년 한번 두드려 잡아보자.” “좋습니다. 뭐 김 형사님 정직 먹으면 우리가 같이 놀아드리죠. ㅋㅋ" “그래 미친 짓 한번 해보자.” 김 형사님은 팀장에게 내 자살에 관련된 서류 일체와 내가 쓴 소설 묶음을 받아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신의 책상서랍에 넣어둔 채 마치 담배를 피우러 가는 듯 바깥으로 향했다. “박 기자님.” “누구십니까?” “내 목소리도 모르요? 나 김이요.” “이 번호는?” “그냥 듣기만 하소. 오늘 아파트 건 제대로 터트릴 자신은 있소?” “당연하죠.” “그럼 당장 우리 사무실로 와서 내 책상서랍 두 번째 칸에 원고뭉치 그거 들고 갔다가 사진만 찍고 원래 위치에 갖다 놓으소.” “정말입니까?” “얘기는 된 일이지만 그래도 눈치껏 처리하소. 누구 목 날릴 일 만들지 말고.” “예. 고맙습니다. 바로 가지요.” “야. 오늘 너거 가게에 싸우는 놈 없나?” “예.” “임마. 너거 가게에 와서 시비 걸고 싸우는 놈 없냐고.” “아직 영업 시작도 안했는데 싸우긴요.” “진짜 그 새끼 말귀 더럽게 못 알아먹네. 내가 지금 니, 신고 받고 그리고 가고 있는 거니까 빨리 싸울 놈 만들어 놔.” “형님 누가 신고를 했는데요?” “야! 이 씨발놈아. 너거 가게서 언놈이 와서 시비를 걸어 종업원들하고 싸우고 있다고 니가 신고를 해서 내가 달려가고 있다고.” “예. 일단 알겠습니다. 형님.” “빨리 니가 내 업무용 전화기로 전화나 때려.” “예. 형님.” 김 형사는 부산역 옆의 유흥가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 가게에 들어가더니 양아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덩치를 하나 데리고 나와 자신의 차에 태운다. “임마. 대충 며칠만 살고 나오면 되니까 좀 쉰다고 생각하고 기다려. 알겠나?” “예. 형님.” “이 씨발놈이. 내가 어떻게 니 형이냐?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채워.” 김 형사는 수갑을 뒤로 던져 그 덩치에게 수갑을 차게 했다. 그리고 경찰서 마당에 도착해서 덩치를 내리게 한 후, 형사계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놈은 뭐야?” “역 쪽에 있는 김 사장 가게에 와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기에 가서 잡아 온 겁니다.” “그럼 단순폭행에 기물파손?” “대충 그렇죠.” “그럼 대충 조서 꾸며서 송치시켜. 그 정도면 구속감은 아니니.” “예. 팀장님.” “그런데 김 형사 아침 그 건은 어떻게 되어가? 서장이 직접 챙길 모양이던데.” “일단 이 건 처리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김 형사는 팀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덩치에게 진술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덩치역시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조서를 확인한 다음 김 형사에게 건넨다. “임마 그걸 벌써 나한테 주면 어떻게 해?”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너 조서 처음 써봤어?” “예.” “완전 초짜구만. 팀장님 이 친구 벌금이겠는데요?” “뭐 그렇다면 그렇게 처리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김 사장이 직접 전화해서 난리를 치기에 점수나 좀 받는 건수인줄 알았더니 완전 똥 밟았네요.” “어 인주가 어디 갔지?” 김 형사는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내뱉고는 허리를 숙여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연다. 그리고 잠시 후 새파랗게 질린 듯 한 표정으로 팀장에게 허겁지겁 뛰어간다. “팀장님 혹시 제 서류 치우셨습니까?” “무슨 서류?” “오전에 자살사건 서류요?” “그걸 내가 왜 치우나.” “아까 팀장님께 받아서 분명히 책상 두 번째 서랍에 넣어두고 나갔는데…….” “잘 찾아봐. 다른 서랍에 넣어두었겠지.” “아뇨 분명히 두 번째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 형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두 번째 서랍 뿐 아니라 자신의 책상 서랍 모들 빼서 책상위에 엎는다. “와~ 시발 돌아버리겠네. 그 서류가 어디 갔어?” “김 형사님 무슨 서류요?” “아침에 그 서류 말이야.” “그게 없어졌어요?” “응. 못 찾으면 좆 되는데.” 김 형사가 서류를 분실했다고 소리치자 형사계 안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치고는 연기력들이 제법이었다. “일단 난 서장님께 보고를 하고 올 테니까 당신들은 혹시라도 사무실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샅샅이 살펴봐.” 팀장이 서류 분실에 대한 보고를 위해 형사계 사무실을 나가자, 형사들은 서류를 찾는 양, 자신들의 책상 위와 책상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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