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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시트콤 - 6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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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시트콤 제 6부 1장 거지왕]
“갑수씨, 일어나세요.”
몇일동안 심야PC방을 맡은 통에 깊은 잠에 빠졌었는지 김명순이 깨우지 않았으면 세상 모르고 늦잠을 자고 말았을 것이다.
“몇신데요?”
“일곱시에요. 여덟시까지 출근하려면 지금쯤 나서야되거든요.”
“잠은 잘 자셨수?”
“네.”
“코 골이가 너무 심했죠?”
“아뇨. 들어줄만 했어요.”
“몇일 PC방에서 밤샘을 했더니 몸이 녹신거리는게 말이 아니네.”
“뭐하러 그렇게 힘든일을 하세요?”
“십년만 젊었어도 이러진 안않을텐데 늘그막에 야심이 생기지 뭐요.”
“어떤 야심인데요?”
“왜 있잖수. 일거리 없어서 길거리 배회하는 노숙자들...”
“그 지저분하고 게으른 사람들이요?”
“한 땐 그들도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을꺼요.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요.”
“어떻게요?”
“어차피 단박에 신세 바꿀수는 없는 노릇일테니까 낮엔 계속 거렁뱅이 동냥질을 시키고 밤엔 오죽 날씨가 춥잖소. 그네들을 PC방으로 인도해서 몸이라도 녹일 수 있게 하려는거요.”
“어머, 그럼 PC방이 완전히 거지소굴로 변하겠네요?”
“첨엔 그렇겠죠. 컴퓨터란걸 만지다 보면 점차 깨이는 사람들이 생길꺼요. 단 몇사람만이라도 새 삶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게 되면 그게 조금씩 조금씩 전파되어 언젠가는 모든 노숙자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겠소?”
“믿기지는 않지만 그럴듯한 소리네요.”
“지하철 계단밑에서 웅크리고 잠자는게 편한 사람들이겠지만 추위만큼은 피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거든요. 그들이 쉴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는 돈을 버는거니까 거지소굴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정도는 극복해야하지 않겠수?”
“만약에요. 저도 끼워주면 뭔가 역할이 생길 것 같아요.”
“왜요? 거지소굴이라며...”
“말씀 들어보니까 공익사업인것처럼 겉만 포장된거구 사실은 고수익 사업이잖아요.”
“허허, 내가 노숙자들을 뜯어 먹는 왕거지란 말이우?”
“그게 아니구요. 생각만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인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 것 같아서요.”
“댁이 뭘 할 수 있겠수?”
“제가 중국에 있을 땐 학교 선생이었거든요. 지금은 누굴 가르칠 형편이 못되지만 노숙자들을 이끌어 세상에 반듯하게 내 놓는 목표라면 딱이잖아요.”
“힘든 일일꺼요. 남의 간섭받기 싫어서 노숙자 생활로 뛰어든 사람이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이리저리 몰아 부친다고 말이나 들어먹겠수?”
“갑수씨의 생각이랑 제 생각이랑 자꾸 상의하다 보면 좋은 방편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래만 준다면 큰 힘은 될텐데...”
“알았어요. 오늘은 출근해야 한까 일하면서 종일 묘안을 생각해 보고 저녁때 다시 올께요.”
“오늘 저녁땐 잠잘 생각은 아애 생각도 마시우.”
“왜요?”
“어제밤처럼 새초롬해선 어느 남자가 품에 안고 싶겠수?”
“호호, 그래도 할 건 다 했잖아요.”
“몇시간째 애 태운걸 생각하면 다신 댁과 잠자리할 엄두가 안날 것 같더구먼.”
“첨이잖아요. 여자가 맘 먹고 왔어서 훌러덩 옷벗고 살 섞는게 좋아 보이나요?”
“그건 아니지만, 댁이 워낙 시쿤둥해서 나를 멀리 한다고 생각했었다우.”
“이젠 안그럴께요. 어젯밤은 만족 하셨잖아요.”
“알겠수. 담엔 좀 웃으면서 밝은 낯으로 봅시다.”
나는 김명순과 함께 모텔을 빠져 나왔다. 큰 길가에서 김명순은 버스를 타고 떠났고 나는 길을 건너 철호가 혼자서 애쓰고 있을 PC방으로 돌아왔다.
“행님요. 죽는줄 알았슴더.”
“뭔 소란?”
“저 문주양반이랑 문파 손님들 아니었음 어젯밤 PC방 쫄딱 망했부렸을껍니더.”
“무슨 일인데?”
“갑자기 PC방 인터넷이 따악 막혔다는거 아닙니꺼.”
“그래서?”
“손님들이 인터넷 안된다구 난리버거지 칠 때 문주 양반이 해결해 줬다 아임니꺼.”
철호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어젯밤 벌어졌던 일을 설명하는 사이 문주 김동수가 어슬렁 거리며 카운터로 걸어왔다.
“갑수 아저씨. 큰일날뻔 했어요.”
“찬찬히 말해봐. 무슨 일인데.”
“아마도 시샘하는 다른 PC방에서 바이러스로 인터넷망을 공격한 것 같더라구요. 우리 문파 회원들이 아저씨 부탁대로 좆 빠지게 컴퓨터를 고쳤다니까요.”
“어떤 놈들이 그런거지?”
“뻔한 동네에서 한쪽이 잘되면 다른 쪽이 안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들락달락 하면서 계속 PC방을 못살게 구는거겠죠.”
“문주 생각엔 어떻하면 좋겟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 아니겠습니까. 그냥 밀어 붙혀야죠.”
“나야 그럴 수만 있다면 더 좋은게 없지만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저씨가 생각할 몫이구요. 전 문파 회원들 단도리해서 계속 여길 다니도록 묶어 드릴께요.”
“좋아. 문주가 그렇게 맘써준다면 나도 알바랑 근무 교대하곤 다른 PC방 사장들을 만나서 협상을 해야겠어.”
“협상한다고 들어줄 사람들인가요? 더 괴롭히겠지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우선 문주랑 문파회원들이 고생했다니 여기 십만원 줄테니까 아침 해장국이라도 든든하게 먹여 들여보네.”
나는 카운터에 쌓인 돈 중에서 만원짜리 열장을 꺼내 불쑥 문주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휴, 웬 십만원씩이나요. 컵라면 한 개씩 먹이면 될일인걸요.”
“어허, 애쓴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되지. 이십명 정도 되잖아. 그러니까 해장국 오천원짜리 먹이면 딱 십만원 들겠구먼.”
“밤샘해서 번돈을 이렇게 날리면 저희가 미안하잖아요.”
“대신 매일 오잖아. 내가 고마워서 아침 사는거라구 말 잘해주고.”
카운터에 쌓인 돈을 계산해보니 문주한테 십만원 준걸 포함하면 얼추 사십만원은 넘은 것 같았다. 쥔양반한테 십만원 주고 과자랑 컵라면 공짜로 먹어치운 걸 물어주면 음료수 판돈 팔만원 빼더라도 오늘도 오만원은 챙길 수 있다. (시험문제:과자랑 컵라면 공짜루 먹어치운 것은 얼마일까요?)
“철호야, 강호한텐 연락 안왔니?”
“행님이야 늙었으니까 빨랑 끝났겠지만 그 행님이야 젊은데 벌써 올라구예?”
“이놈이, 내가 늙기 뭔가 늙어?”
“행님요, 한따까린 했어예?”
“어허, 버르장머리 없구먼.”
내가 철호의 머리통에 알밤을 한 대 매기자 철호는 깔깔 웃어대며 도망치듯 게임하던 자리로 달아나 버렸다. 강호가 젊은 아낙과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면 더 좋은 일이 없겠다. 철호놈도 채팅인가 뭔가를 하면서 이여자 저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대신 뭔가 자신에게 걸맞는 한가지에 메달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목표로 세운 노숙자들의 편안한 겨울나기도 막상 그들을 설득해서 PC방에 앉힐 수 있을지도 걱정일 뿐이다.
“김형, 어젯밤도 장산 잘 됐나보네.”
쥔 양반이 훨씬 밝은 표정으로 PC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글세 말이우. 요금 올리니까 북적거리는게 여간 좋은 모양세가 아니네.”
“복덩이가 들어왔다구 좋아서 막 떠들고 다녔어요.”
“어허, 덕분에 우린 밤새도록 단속반한테 시달렸다우.”
“뭐요? 정말?”
“쥔양반. 겨우 몇일 잘된 것 뿐인데 그렇게 소문내 버리니까 딴 PC방에서 안달하며 이것 저것 쑤신 탓에 막판엔 바이러스랑 전쟁을 치뤘다우.”
“에이쓰블. 하두안되는 PC방이라 손가락질 받던 터에 김형이 불끈 일으켜주길래 동네를 돌며 자랑좀 했기로 서니 그따위로 훼방을 놓았단 말이죠?”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아니우. 남이 잘되면 당연히 자기 장사가 안될 판에 쥔 양반 떠드는 소릴 듣고 박수 칠 사람이 누가 있겠수?”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두 기분이 좋아서 덩실 춤을 추고 싶었거든요.”
“옛수, 어젯밤엔 사십만원 벌었는데 과자값 칠만원 대신 물구 음료수 판돈이 팔만원이구, 바이러스랑 전쟁치른 손님들 아침밥값으로 십만원 줬수. 내 몫은 오만원이구 쥔양반 몫은 약속대로 십만원이우.”
“바이러스랑 전쟁치르면 쓴 밥값은 내가 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럼 나야 좋지만. 많이 벌었으니까 내가 부담 하리다.”
쥔양반은 십만원과 음료수값 팔만원이랑 과자와 컵라면값 칠만원을 합쳐 이십오만원을 받아들곤 감격스러운지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꼬옥 주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김형, 고맙습니다. 여기 오만원은 돌려드릴테니 계속 이렇게만 되게 해주세요.”
“쥔양반, 오만원은 호의로 받아 들이겠수. 한가지 부탁할것이 있는데 동네 PC방 쥔들에게 내가 한턱 쏘겠다구 말 좀 전해주시우.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좋으니까.”
“만나서 뭘 하려구요?”
“맨날 서로 헐뜯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수. 삼겹살에 쏘주 한잔 쏠테니까 웬만하면 쥔 양반두 그 자리에서 만납시다.”
알바가 열시쯤 들어올 때 이강호도 멀쑥한 차림으로 PC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님, 어젯밤 괜찮았어요?”
“응, 덕분에.”
“영자씨가 형님을 엄청 생각해서 만든 자리래요.”
“고맙다고 전해줘.”
“별루 였나보죠?”
“아냐, 좋았어.”
“그런데 시쿤둥한 것 같아서요.”
“강호야, 지난 번 내가 얘기한 것처럼 노숙자들에게 PC방 출입을 시킬 건데 정말 잘 할 수 있겠지?”
“형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당당하게 돈내고 PC방에서 따뜻한 겨울밤을 날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싫어할 놈이 어딨어요?”
“쉽게 생각하지 말아라. 간섭받기 싫어서 그 생활하는 사람들 아니냐.”
“그건 여름철이나 하는 얘기구요. 당장엔 등짝에 얼음베길 판인데...”
“좋아. 어차피 어려운 일도 쉽게 생각하면 쉬운 일이지.”
“지금 당장 다녀올까요?”
“그래라. 넌 시내에서 놀던 놈이니까 오늘은 뜸만 들이고 낼부터 시작하자.”
“오늘 밤 당장은 안되고요?”
“PC방 쥔들을 설득해야지. 거지새끼라구 한번 쫒겨나면 다시는 설득이 안될테니까.”
“어쩔라구요?”
“오늘 밤 PC방 쥔들한테 소쭈 한잔 내겠다구 그랬으니까 참석한 사람들에게 PC방이 팡팡 돌아갈 비법을 전수해줄 생각이다. 그 참에 PC방 관리 위임계약이란 걸 만들어서 철호랑 너랑 내가 각자 맡아서 하면 당장은 세 개의 PC방을 운영하게 되잖냐.”
“형님, 위탁관리라구요?”
“우선 이 PC방에서 보여준 능력을 단속이란 명목으로 동네 PC방 쥔들은 들락거리면서 두 눈으로 확인했잖냐. 오죽 답답했으면 바이러스 침투까지 시도했겠냐. 그렇게 목이 졸리던 사람들에게 심야시간에만 합쳐서 이십만원 이상 보장해주면 거절할 이유도 없을 것 같잖니?”
“노숙자랑 일반 손님이 막 섞이겠네요?”
“안되지. 관리위임을 받게 되면 손님 구성을 우리가 잘 해야겠지.”
“어떻게요?”
“우선 제일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갖고 있는 PC방엔 일반 철야 손님을 이주 시키고,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PC방부터 노숙자들을 차곡차곡 채워놔야지.”
“PC방 성능을 어떻게 알죠?”
“강호, 네가 대상 PC방을 돌면서 성능 체크는 할 수 있잖겠니? 그걸 토대로 노숙자들이 집단으로 들어갈 PC방을 선정하고, 노숙자 사이에서도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에 따라 점차 좋은 컴퓨터가 있는 PC방으로 자리를 옮겨 주게되면 당장에는 등짝에 어름 베기는것만 피하는데 주안점을 둘 뿐이지만 점차는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에 차등이 생기면서 재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선별할 수 있게 될꺼야.”
“형님, 대단해요. 그걸 생각해낸 형님은 과거엔 무슨 일을 했던걸까?”
강호가 불쑥 과거의 내 역할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순간 나는 또 철퍼덕 카운터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16비트 어드레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겨우 64K바이트 뿐이고 4비트 단위로 연산하면서 오프셋을 이용해 1M바이트까지 메모리를 확장했던 암담한 현실에서 드디어 16비트 베이스에 24비트 어드레싱 버스를 지원하는 80268 컴퓨터가 시판되고 있었다. 슈퍼 컴퓨터였다. 무려 16M바이트까지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게 되었으니 프로그램을 로드하면서 리얼모드와 보호모드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스스로 메모리를 관리하는 스텐다드 모드의 불안정성을 빼더라도 괄목할 만한 컴퓨터의 성장이었다. 당장 새로운 프로세스를 이용하여 인공위성에서 뿌려대는 다양한 주파수대역을 스캔하고 필터링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는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 아니 더 이상 발전할 수도 없다. 인간도 아닌 기계가 24비트 연산을 통해 쏟아내는 명령해석의 속도는 단순한 인간의 사고력을 월등히 뛰어 넘어 빠른 시간안에 인간을 능가하는 컴퓨터 지능이 개발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두려운 세상이 오고 있었다.
“김박사님, 32비트 컴퓨터가 나온답니다.”
정박사가 신문기사를 들고 연구실로 뛰어 들어왔다.
“뭐? 엄청나잖아. 프로세스의 이름을 80386으로 한다는 것은 8088, 80286의 뒤를 잇겠단 얘길테고 32비트라면 우와 무려 4기가바이트까지 메모리를 제어한단 말인데 엄청난 IT 혁명이 지구 전체를 뒤 흔들겠군.”
“대단하죠? 컴퓨터가 지배하는 시대가 가까워진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강호가 어깨를 감싸며 갑자기 쓸어진 나를 흔들지 않았다면 더 깊은 과거의 기억속에 편린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강호의 놀란 표정에 씨익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몸을 털고 있어서며 말했다.
“야, 삼총사가 모처럼 아침밥이나 거나하게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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